에너지 전환 역사는 문명의 진화사라고 할 수 있다. 주된 에너지원이 바뀌면 문명도 같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전 인류사 대부분은 사람과 동물의 근력, 나무 등 생물 기반 에너지 시대였다. 산업혁명 이후 석탄, 석유, 가스와 원자력을 거쳐 재생에너지 시대에 와 있다. 역설적으로 지금의 에너지 전환은 산업문명을 가능하게 했던 화석연료가 원인 제공자다. 화석연료에서 배출된 온실가스가 기후변화를 재촉했고 세상은 기후위기에 직면했다. 어찌 보면 다시 햇빛과 바람에 의존하게 된 셈이다. 햇빛과 바람을 직접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다.
당면한 에너지 전환이 화석연료 사용을 그만두기만 하면 좋을 텐데, 그리 단순하지 않다. 무탄소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 이 재생에너지로만 가능하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햇빛과 바람은 자연에서 온 것으로 간헐성 을 잉태하고 있다. 무한 공급되는 에너지원이지만 변덕을 부리기 일쑤다. 이 변덕에 우리 일상 전부를 맡기는 건 위험한 일이다. 하나의 에너지원으로 현재 문명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지금까지는 화석연료를 벗어나는 탈탄소 에 골몰했다면, 이제부터는 무탄소를 유지하되 어떻게 안정성을 확보하느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에너지 믹스(Energy Mix) 가 다음 에너지 전환에 필수 조건인 이유다.
에너지 믹스는 에너지원의 조합으로, 한 나라가 사용하는 에너지 구성 비율을 말한다.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믹스를 바꾸는 여정이고, 새로운 에너지 믹스는 에너지 전환이 완성된 모습이다. 사실 에너지 믹스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하나의 에너지원으로는 사회가 요구하는 공급량을 만족시킬 수 없으니 여러 에너지원을 함께 사용해 오곤 했다. 때에 따라 그 비중이 달라질 수는 있어도 말이다. 기후위기는 화석연료를 과도하게 사용한 에너지 믹스 실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탄소중립도 에너지 믹스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우리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세운 에너지 믹스 목표는 다음과 같다. 재생에너지 50%, 천연가스 10~15%, 기존 원전과 차세대 원전 30~35%, 수소 5%로 구성되어 있다. 석탄은 여기에 없다. 천연가스는 석탄을 대체하는 과도기 전원으로 탄소 포집을 병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재생에너지가 핵심이고 24시간 전력을 공급하는 안정적 기저 전원으로 원자력을 보완으로 두는 구조다. 재생에너지로 가는 방향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ESS 같은 저장기술과 장비의 고도화가 숙제로 있을 뿐이다. 문제는 원자력 발전 부문이다. 기존 대형 원전은 사고 위험, 핵폐기물 처리 미해결, 공사비와 운영비 상승에 따라 에너지원으로서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하여 정부도 차세대 원전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가동 중인 원전은 수명을 다할 때까지 최대한 활용하고 경수로 방식의 대형 원전은 더 이상 짓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차세대 원전은 기존의 대형 경수로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유연한 새로운 원자력 발전 기술이다. 우리나라는 소듐냉각고속로(SFR)와 소형모듈원전(SMR) 모델을 선택하고 있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 가운데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탄소중립은 재생에너지만으로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화석연료를 퇴출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원자력의 도움 없이 탄소중립은 요원하다. 그렇다고 위험천만하고 환경에도 해롭고 경제성도 떨어지는 기존 대형 원자로를 끌어안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존 원전은 탄소는 적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은 에너지다. 차세대 원전은 해결책으로 계속 회자되어 왔었다.
전체 내용보기
Monday 3 November 202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