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6 Dec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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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 1 month ago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간다

2007년 9월 중순 어느 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당시 나는 병역거부로 청주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는데 교도소 측의 실수로 가석방 대상자에 포함되지 못했다. 다행히 바깥 친구들의 항의로 다시 가석방 대상자에 올랐다. 살인 죄인도, 병역거부자도 모두 다 한 마음으로 하루라도 빨리 감옥 밖으로 나가길 고대한다. 떨어졌다고 생각한 가석방 대상에 다시 오르니, 당장 내일이라도 출소하는 것마냥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소식이 나를 들뜨게 했다. 국방부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감격스러웠다. 나는 비록 감옥살이를 했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사회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생각에 감정이 복받쳤다. 한 달 뒤 나는 가석방으로 출소했고,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큰 표 차로 당선되었다. 1년 뒤인 2008년 12월, 국방부는 스스로 약속한 대체복무제 도입을 백지화했다.

호사다마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10년 동안 수천 명의 병역거부자가 감옥에 갔고, 100명 가까운 병역거부자가 무죄 판결을 받았고, 올해 6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대체복무 입법이 기정사실로 되었고, 마침내 11월 1일, 대법원의 사실상 무죄 판결로 병역거부자가 범죄자가 아니게 되었다.

10년 동안 고난이 더 길어진 탓인지, 기쁨도 감격도 배가 되었다. 더 이상 병역거부자들이 드라마 lt;슬기로운 감빵 생활 gt;을 보면서 팩트체크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국제인권기준을 판결의 직접적인 근거로 삼았다는 점에서 향후 법원이 더욱 적극적으로 소수자 인권 보호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국방부는 징벌적인 형태의 대체복무제를 준비 중이다. 현역 군복무보다 2배 긴 36개월 동안, 교정시설에서 대체복무를 하고 대체복무 심사위원회를 국방부 산하에 두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다.

국제 인권 기준에 한참을 못 미치고, 심지어 2007년 국방부 스스로 내놓은 방안보다 오히려 후퇴한 안이다. 그동안 이어진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와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 대법원의 무죄 판결 취지를 모두 무색하게 만드는 안이다.

국방부가 준비하고 있는 안대로 대체복무제가 도입된다면, 이는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또 다른 징벌로 기능하게 될 것이고, 한국 정부는 거듭 유엔의 시정 권고를 받을 게 불 보듯 뻔하다. 또한 이렇게 도입된 대체복무제가 과연 우리 사회에 유의미한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국방부는 국민감정을 핑계 삼고 있다. 구체적인 근거나 논거를 제시하지는 않지만 그간 국방부가 이야기해온 바를 고려한다면, 군복무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체복무제도가 군복무보다 현저하게 좋지 않은 형태로 도입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상대적 박탈감 이 기준이라면

나는 군복무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한국 사회가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그들의 박탈감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를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군복무자의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 대체복무제를 더 나쁘게 만들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군복무자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근본적인 이유는 대체복무 때문이 아니라 군복무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대체복무제를 징벌적인 형태로 만드는 것이 국민감정 때문이라는 국방부의 대답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지나치게 게으른 선택이다. 국가인권위에서 최근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군입영대상자들이 군복무에서 가장 부담을 느끼는 측면은 경력 단절 및 자기계발 이었다.

대체복무가 군복무보다 길어야 하는 까닭을 묻는 문항에서도 군복무에 비해 자유로운 생활, 평등한 관계 등 기본권의 제약이 덜할 것이므로 를 선택한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군복무자의 박탈감을 해소하려면 대체복무제를 나쁘게 만들 게 아니라, 군복무 여건에서 특히 복무자들의 경력단절이나 사회와의 단절, 자기 계발 기회 축소 등을 해결하는 편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좀 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수도 있다. 왜 대체복무제 설계의 기준이 군복무자의 상대적 박탈감이어야 하나? 군복무자의 권리와 병역거부자들의 권리는 충돌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포퓰리즘적으로 접근해서 병역거부에 적대적인 여론을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일부의 정치인들이나 정치세력이 마치 군복무자의 권리와 병역거부자의 권리가 서로 상충하며 제로섬 게임을 펼치는 것처럼 묘사하는 건 굉장히 잘못된 일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군복무자의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군복무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 상대적 박탈감을 기준 삼아 만든 대체복무는 결국 징벌적일 수밖에 없다. 박탈감 해소를 위해 더 나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탈감의 기원이 대체복무제가 아니라면, 대체복무가 아무리 나쁘더라도 군복무자의 박탈감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군복무자의 박탈감이 아니라 다른 기준으로 대체복무제도를 설계해야 하지 않을까?

대체복무제도를 어떻게 도입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더 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더 풍성한 이야기와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도 있다. 혹은 좀 더 안정적인 제도 운용에 초점을 맞춘다면,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제도의 악용을 방지하는 측면에서 대체복무제도를 설계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중요한 계층이 실제로 대체복무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입영대상자 그룹이다. 이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제도의 악용을 방지할 수 있으면서도 병역거부자들에게 징벌적이지 않은 적절한 기준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런 기본적인 연구조차 수행하지 않은 채 가장 쉽게 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행정편의주의적인 방식으로 대체복무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 이후로 대체복무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10년 전에 비해 여론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무엇보다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우리 모두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크게 개선되었다. 운이 매우 좋게도 남북관계는 분단 이후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중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대법원의 무죄판결은 병역거부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을 정리해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대체복무제가 필요하다고 말해왔고, 최근 국회 연설에서도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대법원의 무죄판결이 전해준 감격을 넘어서, 실질적으로 대체복무제를 어떻게 도입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군복무자의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 군복무 여건과 사병 처우, 인권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하고 대체복무 또한 인권기준에 맞는 형태로 설계되어야 한다.

사법부의 결단이 나올 때까지, 1만 9천여 명이 전과자가 되는 동안,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국방부는 이제라도 자신의 책임의 크기를 절감하며 합리적이고 인권적인 대체복무제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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