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1 Nov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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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 16 days ago

[모이] 시위 중인 니카라과·평화의 땅 코스타리카에 가다


여행자들이 피하는 위험한 나라들에 가다

중미는 위험한 남미보다 더 위험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멕시코에는 산적이 많고,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살인율이 세계에서 제일 높고, 니카라과는 미국이 만든 잔인한 반군이 활동했고, 파나마에는 독한 모기가 많다는 얘기들.

하지만 직접 만난 멕시코에는 산적이 없었고, 과테말라 사람들은 참 친절했으며 수도 과테말라시티에서는 여행자에게 시내버스 요금도 받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를 되도록 빨리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니카라과는 2018년 5월부터 정부의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저항하며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정부에서는 폭력으로 진압하고 있었다. 과테말라에서 만난 모든 여행자가 니카라과를 피해 비행기로 코스타리카나 콜롬비아로 이동한다고 했다. 모두 니카라과행을 말렸다.

니카라과의 대한민국 대사관에 전화를 했다. 매우 위험하니 되도록 여행을 자제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비행기는 비싸고 내 계획은 가능한 육로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니카라과 입국이 금지된 것은 아니니까 부딪혀 보기로 했다. 과테말라-엘살바도르 국경부터 온두라스를 지나 니카라과-코스타리카 국경까지는 최단 거리로 753킬로미터, 몇 번의 버스를 타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틀이면 이동할 수 있으리라.

8월 12일 아침 일찍 과테말라 시티를 떠나 국경 바예 누에보 Valle Nuevo에 닿았다. 리오 파즈 Rio Paz, 평화의 강을 건너니 엘살바도르였다. 과테말라와 크게 다른 점은 버스가 천천히 달린다는 것. 과테말라 치킨버스 와의 이별이었다. 같이 국경을 넘은 모녀도 버스가 편안해져서 좋다는 엄지 따봉 제스처와 웃음을 보냈다.

아우아차판을 지나 산타아나의 슈퍼마켓에서 식량을 보충하고 산살바도르로 가는 버스를 갈아탔다. 엘살바도르는 자국의 화폐가 없고 미국 달러를 사용한다. 슈퍼마켓의 빵과 과자들도 유난히 미국 회사 제품이 많았다. 판아메리칸 하이웨이 를 타고 널리 퍼져있는 미국의 영향력이 느껴졌다.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온두라스 국경 방향 산타로사로 가는 버스를 갈아 탔을 때는 해가 지고 있었고 밤이 오자 비가 내렸다. 터미널 주변 현지인들에게 물어 물어, 몇 번의 거절 끝에 노래방 이층 테라스에 텐트를 칠 수 있었다.

해가 뜨자마자 엘 아마티요 El Amatillo 국경 마을로 이동했다. 온두라스 남부 도시 촐루테카를 거쳐 몇 시간만에 과사울레 Guasaule 니카라과 국경에 닿았다. 국경의 다리 니카라과쪽 표지판에는 일본 국기가 붙어 있었다. 2017년 일본으로부터 받은 경제 원조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위로 인해 입국이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국경들보다 직원이 요구하는 서류가 많았고, 여러 차례 돈을 요구해서 조금 의심스러웠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다섯 개 나라는 1823년부터 1840년까지 중앙아메리카연방공화국이라는 한 나라였다. 중미에 강한 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원하지 않은 강대국 미국의 견제와 내전으로 인해 와해되었지만 이후에도 여러 번 연방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코스타리카를 제외한 네 나라는 CA4(Central America 4) 를 결성해 통합 국경을 설정했다. 네 나라를 모두 포함해 90일까지 체류할 수 있고, 이 나라들 사이에서는 국경 도장도 찍어주지 않았다. 마주치는 니카라과 사람들에게 지금 이 나라를 여행하는 게 위험하냐고 물어봤는데 하나같이 그렇지 않다 고 대답했다. 그래도 걱정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다. 위험 을 강조하는 미디어의 영향력은 강력하다.

니카라과, 무서운 밤, 따듯한 정

모모톰보 화산이 있는 솔로틀란 호수를 지나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에 도착했을 때는 다시 깜깜한 밤이 왔다. 바쁜 버스 차장들을 다급히 붙잡고 코스타리카 국경으로 가는 버스가 있냐고 물어보자 히노테페 Jinotepe 라는 이름을 알려주었다. 도심에 있는 다른 터미널 이름인 줄 알았는데 버스는 점점 마나과에서 멀어지더니 불빛 한 점 없고 안개가 가득 낀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갑자기 추워졌다. 앞자리 청년이 옷을 꺼내 입길래 나도 배낭을 뒤적였다. 깜깜해서 옷을 못 찾고 있는데 불빛이 비춰 왔다. 청년이 켜 준 휴대폰 플래시였다. 내가 옷을 다 입을 때까지 기다려주고는 미소를 던졌다. 나도 그라시아스! 하고 엄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정해진 숙소가 없이 낯선 곳에서 밤이 올 때면 늘 무서운데, 현지인의 작은 친절은 정말 따듯하고 큰 힘이 된다. 이런 정겨운 사람들 덕분에, 나는 여행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히노테페 중앙 공원에는 인사를 건네도 받지 않는 약에 취한 듯한 사람들이 있어서 다시금 무서움과 불안을 느꼈다. 은행 주차장 옆에 비를 피할 공간이 있고 종종 경비원도 소변 보러 가는 길에 순찰을 도는 듯해, 허락을 받고 텐트를 쳤다. 무사히 아침이 왔다. 여행자들이 모두 피해 가는 니카라과에서 노숙을 하다니 조금 뿌듯했다.

시위와 탄압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하지만 니카라과 여행자가 나만은 아니었다. 히노테페에서 남쪽 도시 리바스로 가는 길, 작은 마을 도로변에 주황색 텐트를 친 자전거 여행자를 몇 초간 스쳐지났다. 버스로야 하루면 지나갈 수 있지만 자전거로 니카라과를 여행하려면 며칠이 걸릴까. 오로지 자신의 체력으로 페달을 저어 세상을 여행하는 자전거 여행자들이 존경스러웠다.

중앙아메리카 최대의 담수호 코시볼카 호수를 보기 위해서 리바스에서 라비르겐이라는 작은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탔다. 니카라과도 과테말라처럼 화산이 많지만 고도가 낮아 느낌이 또 달랐다. 마을에 내려 호숫가로 가니 바람이 강하게 불고 파도가 쳤다. 커다란 호수 한가운데 콘셉시온 화산과 마데라스 화산이 떠있어 신비로웠다. 두 화산은 오메테페 섬을 이루고 있는데, 나우아틀어로 두 개 ome 의 산 tepetl 을 뜻한다.

니카라과를 거의 다 종단하는 동안 시위대를 보거나 폭력적인 분위기를 느낀 적은 없었다. 위험하지 않으니 호수를 바라보며 하루를 더 보낼까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풀숲에서 통통한 동물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부딪히면 호수에 빠질 것 같은 위치였다.

화들짝 뒷걸음을 치며 보니 돼지였다. 내가 호수와 화산을 감상하며 서 있던 자리는 돼지의 구역이었던 것이다. 돼지는 만족스럽게 꿀꿀거리며 더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사육하는 돼지도 여차하면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돼지 핑계를 대며, 거친 바람 부는 호수에 더 머물지 않고 코스타리카로 가기로 했다. 국경 피냐스 블랑카스 Penas Blancas까지 가는 길은 한적해서 아름다웠고 거대한 풍력발전기들만이 바쁘게 돌고 있었다. 버스가 잘 다니지 않은 길이라, 걷다가 손을 흔들어 히치하이킹을 했다. 차를 태워준 사람은 국경 지대에서 일하는 건설 기술자 마르코스 곤살레스 Marcos Gonzalez씨였다.

지금 지나는 이곳이 원래 국경이었는데 전쟁으로 국경이 옮겨졌어요. 니카라과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정치가 항상 불안정하죠. 요즘 일어나는 시위와 폭력 진압 상황이 특별할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많은 정치인들은 나쁘지만, 니카라과 국민들은 대부분 선량하고 좋은 사람들이에요. 자연도 아름답고요.

군대가 없는 나라, 마약은 많은 나라

풍요로운 해안 이라는 뜻의 코스타리카 Costa Rica. 푸라 비다 Pura Vida, 순수한 삶 이라는 단어를 매일같이 인사말로 주고받는 나라. 중남미 이웃 국가들과 달리 정치 상황이 안정적이고 행복지수가 높으며, 1961년 무상의료 제도를 시행한 나라. 코스타리카는 세계 지표 면적 0.1퍼센트의 땅에 지구 생물종 5퍼센트가 사는 종 다양성과 자연의 나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징병제 국가, 분단 국가인 남한 국민으로서, 군대가 없는 나라 는 어떤 모습일지가 가장 궁금했다. 코스타리카는 1949년 법 개정을 통해 군대를 없앴다.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를 지날 때는 불안함에 서둘렀는데, 코스타리카에 입국할 때는 기대감이 컸다.

여행비용의 큰 부분은 이동비와 숙박비다. 숙박비를 아끼고 교류도 할 수 있게 여행자와 현지인을 연결하는 몇 가지 인터넷 사이트들이 있다. 몇 년 전 아시아를 여행할 때는 중국과 캄보디아에서 카우치서핑 couchsurfing 을 통해 잠자리를 해결하고 친구들도 만났다. 우프 wwoof, 헬프엑스 helpx, 워크어웨이 workaway 는 여행지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숙식이나 숙박을 제공받으며 교류할 수 있는 세계적인 인터넷 시스템이다.

중남미에서는 워크어웨이를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연회비 38달러를 내고 가입했다. 과테말라시티에 머물 때 코스타리카에 사는 이브 가르시아 베빌 Eve Garcia Bevill씨와 연락이 닿았다. 국경과 많이 멀지 않은 곳이라 코스타리카에 입국하자마자 그의 집으로 향했다. 중간 기점 라이베리아 터미널에서 국제전화를 걸어 처음으로 목소리를 확인했다. 산타크루즈에서 버스를 타고 산후아디요 해변 옆 로사리오 강에서 내리면 집이 보일 거라는 안내를 받았다. 주소는 알려주지 않아서 좀 이상했지만 워낙 오지라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산타크루즈에서 산후아니요로 가는 버스는 하루 두 대로, 오후 세 시가 막차였다. 꼼짝 없이 하룻밤을 기다려야 했다. 인적 드문 공터 주차장 지붕 아래 텐트를 치고 있는데 한 남성이 다가왔다.

안녕, 너 어디서 왔어? 여기서 텐트치고 자려고? 여기가 낮에는 괜찮아 보여도 밤 되면 아주 위험해. 밤마다 마약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야. 네 물건 다 빼앗아 갈 거야. 나는 저쪽 마을에 사는데, 우리 집 주차장 지붕 아래 텐트를 치는 게 나을 거야. 오 분만 기다려봐, 내 부인에게 물어보고 다시 올게. 그녀가 우리 집의 보스 거든. 하하하.

코스타리카는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나라지만, 중미와 남미를 잇는 마약의 통로이고 중독자도 많다고 한다. 산타크루즈처럼 작은 마을에도 곳곳에 마약중독자들이 보였다. 도로에서 마주치는 경찰들은 장총을 들고 있고, 담과 철조망이 높은 집들이 많아서 기대만큼 평화로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잠시 후 그는 부인과 어린 막내딸,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다시 왔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인사를 나누고 판잣집 동네에 있는 가족의 집으로 갔다. 친척 가족과 고양이들이 함께 사는 작은 집이었다. 안전한 곳에서 비만 피할 수 있어도 좋은데, 텐트 칠 자리에 안 쓰는 매트를 깔아주고, 저녁밥을 챙겨주고, 텔레비전 리모컨까지 자꾸 손에 쥐어 주며 극진한 손님 대접을 해주어서 너무나 감사하고 따듯했다. 콜롬비아에서 버스 강도를 당하며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메모한 수첩까지 분실해서 이제는 그들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 가족의 친절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정글의 이브와 소피

다음 날 아침 일찍 산타크루즈 가족이 알려준대로 니코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하지만 니코야에는 산후아니요로 가는 버스가 없었다. 지도상으로는 가까웠으나 워낙 시골이라 버스가 다니는 길이 아니었다. 다시 산타크루즈로 돌아가기는 싫어서 사마라를 거쳐 노사라까지 간 다음 15킬로미터는 걷거나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트럭, 승용차, 네 발 오토바이, 두 발 오토바이를 차례로 얻어 타고 로사리오강에 닿았다. 태평양 긴 해변을 따라가는 비포장도로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친절했다. 100퍼센트 확률의 히치하이킹. 손을 드는 족족 차들이 멈췄다. 도시와 아스팔트에서 멀어질수록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이론이 있는데, 코스타리카 시골 사람들의 친절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오지까지 들어오니 좋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로사리오 다리 주변에는 세 채의 집이 있었는데, 그 어느 집도 이브씨의 집이 아니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 아무도 이브와 소피를 몰랐다. 휴대폰에 저장해둔 사진을 보여줘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전화를 대여섯 번 걸어도 받지 않았다. 사기를 당한걸까, 너무나 황당했다.

또 다른 집에 물어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리를 건너 백 미터쯤 더 가니 정글 숲 속에 숨은 또 다른 집이 보였고 문을 두드리며 사람을 부르자 사진에서 본 사람이 나오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브씨였다. 내가 산타크루즈에서 오후 버스를 타는 줄 알았고, 도착 시간에 맞춰 전화기를 켤 생각이었다고 했다. 이리저리 헤매고 엇갈렸지만 결국 만났으니 다행이다. 세 살 소피와 강아지를 소개 받고 널찍한 방도 안내 받았다.

이브씨는 문신을 해주는 타투이스트이고 예술과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아 이곳에 신비주의 예술과 문신 은신처 Mystic Art Tattoo Retreat 라는 이름을 붙이고 워크어웨이 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 여행자들을 초대하며 교류하고 있었다.

소피를 낳기 전에 나는 홈리스였어. 이곳 저곳 많이 돌아다녔지. 소피를 낳고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어. 정착하게 됐고, 소피를 자연에서 키우고 싶었어. 에어비앤비 에서 이 장소를 찾았고 삼 년간 계약했어. 소피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여기서 살 거야. 소피는 자주 아빠를 보고 싶어 하지만 그와 나는 잘 안 맞아서 같이 살면 싸우게 돼. 따로 사는 게 나아. 비자 때문에 세 달에 한번씩 미국으로 가야 돼. 그때 가족들도 만나고 타투 일을 해서 생활비를 마련하지. 코스타리카는 정말 아름답고 우리는 이곳을 좋아해. 집 앞에는 강이 흐르고, 차를 타고 십 분만 가면 굉장히 멋진 산후아디요 해변이 있어. 요즘 소피는 강이랑 바다에서 수영을 배우고 있지.

내가 그곳에서 한 일은 집 주변을 가꾸는 것과 소피를 함께 돌보는 것이었다. 커다란 칼, 마셰티를 휘둘러 야외 샤워장 주변의 나무를 배고, 청소와 설거지를 하고, 소피가 심심할 땐 베이비시터가 되어 같이 놀았다. 내 영어가 세 살 아이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걸 톡톡히 알게 됐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주먹만한 박쥐들과 눈이 마주쳐 깜짝 놀랐다. 밤에는 손바닥만한 바퀴벌레들이 주방이며 식탁으로 날아다녔다. 세 살 소피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나는 무서웠다.

코스타리카는 정글이야. 남미 아마존의 프리퀄 prequel (예고편) 같은 곳이지. 코스타리카의 자연을 너무 좋아하지만 나도 저 커다란 바퀴벌레만은 적응이 안돼.

중미는 위험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사람들도 친절하다는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브 씨가 말했다.

정부와 권력자들, 대기업 자본가들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다니면서 자유롭게 여행하는 걸 싫어해. 미디어는 항상 위험을 강조하지. 사람들이 그냥 정해진 국가 안에서 일하고, 소비하고, 재생산하며 사는 게 그들이 바라는 거야.

국가는 국경과 국민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자본은 노동자가 더 많이 노동하고, 소비자가 더 많이 소비하게끔 작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행은 종종, 국경 너머, 노동 너머, 소비 너머, 일상 너머의 무엇인가를 상상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새로운 세상, 좀더 행복한 삶을 상상하고 살아가고 싶다.

이브씨와 소피의 오랜 친구가 미국에서 비자를 연장하고 돌아오는 날, 방을 비워주기 위해 나는 떠나기로 했다. 마당에 텐트를 칠 수 있으니 더 머물다 가라고 이브씨가 말했지만, 박쥐와 대형 바퀴벌레가 무섭기도 했고, 오지라 먹거리가 부족해 배가 고프기도 했다. 산타크루즈로 친구 마중을 가는 길, 이브씨의 오래된 픽업 트럭이 고장나 차는 로사리오 강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다시 히치하이킹을 해서 산타크루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를 태워준 사람들은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이십 대 청년 두 명이었다. 차에서 내리면서 SNS 주소를 교환하고, 카메라를 꺼내서 물어보았다.

꾸알 에스 수 수에뇨? Cual es su sueno? 당신의 꿈은 무었인가요?
내 꿈? 딴 거 없어. 언젠가 나도 너처럼 자유롭게 세계로 여행 다니고 싶어!

쿵. 심장을 때리는 대답이었다. 마음이 먹먹해져서 오래도록 떠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의 여행이, 그들에게는 꿈이라니. 여행은 때로 많이 지치고 힘들지만, 좋은 여행을 해야겠다고, 이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따듯함과 행복을 나누고 싶다고 다짐했다.

중미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남미로

산타크루즈에서 오후 막차를 타고 밤에 도착한 수도 산호세 거리에는 과연 악명대로 마약중독자와 노숙자가 많아 위험이 느껴졌다. 슈퍼마켓에서 산 빵과 햄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허기를 달래고 서둘러 시내의 숙소를 찾아갔다.

다음 날에는 변두리의 저렴한 숙소로 옮겨 며칠을 더 머물렀다. 얼마 전 과테말라 전국의 우체국들은 사기업에서 공기업으로 전환되면서 우편 업무가 마비된 상태였다. 안티구아도 과테말라시티도 마찬가지였다. 과테말라에서 쓴 엽서들을 코스타리카 중앙 우체국에 와서야 보낼 수 있었다.

군대가 없고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 그러나 마약과 범죄가 많고 집집마다 철조망이 높은 나라 코스타리카. 독특하고 살기 좋은 이 나라가 더욱 평화로워지기를 바랐다. 떠날 때가 다가왔다.

중미에서의 지난한 버스 여행에 지치기도 했고 국경까지만 가는 버스 가격이 비싸기도 해서, 처음으로 국경을 넘어 주요 도시까지 가는 티카 버스 Tica Bus 를 탔다. 여행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고급 버스로 코스타리카 산호세에서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까지 가는 직행버스였다.

1170미터에 위치해 서늘한 산호세에서 하루를 달려 해발 0미터 파나마시티에 도착했다. 덥고 습하고 숙소도 비싸다는 별 것 아닌 이유로, 파나마 여행을 포기하고 콜롬비아로 가기로 했다. 멕시코부터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까지 중미 일곱 개 나라를 육로로 지나왔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중미와 남미의 경계, 파나마와 콜롬비아 국경 다리엔 지역은, 미국부터 중미 전체를 가로지르는 판아메리카 도로가 끊기는 곳으로 국경을 넘는 육로가 없다. 마약으로도 유명한 무법지대이고 배나 비행기로 건너갈 수밖에 없는 미지의 땅이다. 인터넷을 오래 찾아봐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어린 시절 세계여행을 꿈꾸며 가장 동경했던 곳이 인도와 남미였다. 여행을 꿈꾸는 많은 남한 사람들이 비슷한 마음을 가진 것 같다. 몇 년 전 첫 배낭여행은 아시아 일곱 개 나라를 지나 인도로 가는 여행이었고, 이번에는 97일 동안 미국과 쿠바, 중미를 지나 드디어 남미의 바로 코앞까지 다다랐다.

마추픽추, 이과수, 파타고니아, 부에노스아이레스, 리오데자네이루. 남미여, 드디어 내가 왔다!

파나마 공항에서 여행기를 정리하며 이틀을 보냈다. 공항 음식은 비싸니 준비해간 식빵에 땅콩버터를 발라 먹으며 버텼다. 그런 식으로 안 좋아진 건강과 면역력이, 콜롬비아에서 심한 고산병과 대상포진, 게다가 버스 강도 사건의 결과로 다가올 줄은, 그때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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