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1 Nov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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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 15 days ago

감탄사 절로 나오는 곳에서 아내가 주저앉았다

두브로브니크의 높은 성벽을 돌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성벽의 동쪽에 위치한 성 이반 요새(Fort St. Ivana)에 다다랐다. 요새 입구로 들어서자 아직도 포구를 바다 쪽으로 향해 고정된 대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양강국으로 번성하던 두브로브니크의 옛 대포들이 아직도 저 멀리 아드리아 해를 향하고 있었다.

수많은 대포와 보루, 요새들은 군사적 요충지였던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적 위용을 실감나게 한다. 나는 괜히 저 대포에서 쏜 포탄이 바다 위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 가늠해 보았다.

대포 옆에는 사람 키보다 더 큰 대형 선박의 닻이 여행객을 반기고 있다. 금방이라도 닻이 내려질 것 같고, 돛이 펼쳐져 우리를 바다로 인도할 것만 같다. 바다에 수시로 잠겨있었을 저 닻이 아득한 바다를 떠나 성벽 위에 올라와 있는 모습이 마치 한편의 현대 미술품을 보는 것 같다.

박물관 이름은 바다같이 푸른 블루 색상으로 성 이반 요새 성벽 위에 새겨져 있다. 박물관의 이름은 바로 두브로브니크 해양의 역사를 전시 중인 해양박물관(Maritime Museum). 성벽의 중간, 요새 안에 만들어진 박물관이어서 성벽을 걸으면서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의 벽면은 바로 두브로브니크 성 이반 요새의, 돌로 쌓은 성벽이다. 둥근 천장 아래 터널 같이 이어지는 박물관 내부에는 4천 가지가 넘는 두브로브니크 해양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바다를 지키던 실물 요새 안에 만들어진 해양박물관이라서 역사적인 체취가 짙게 배어있고 옛 박물관다운 운치가 있다.

1층에는 17세기~18세기 당시 두브로브니크가 속해 있던 라구사(Ragusa) 공화국의 해양선박 모형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오래된 배들의 역사와 흔적이 남자들의 꿈을 두근거리게 하는 곳이다. 중세시대 서양의 선박 모형을 즐겨 만들던 삼촌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분이 이 섬세한 해양선박들을 만났다면 아마 이곳에서 넋이 나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드리아 해를 따라 펼쳐지는 좁고 긴 해안에 위치한 두브로브니크의 옛이름은 라구사 공화국. 박물관 전시실마다 라구사 공화국 해상무역의 이동경로 등 당시 해상무역과 관련된 전시가 마치 파도처럼 전개되고 있다. 전시실의 지도 위에 이어진 선들은 당시 범선들이 다니던, 바람이 허락하는 길이었다. 바람과 선박이 다니던 길이 두브로브니크의 역사가 되어 전시실 속에 펼쳐지고 있었다. 무역과 전쟁의 역사인 선박의 역사, 해양의 역사가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였던 것이다.

두브로브니크의 아름다운 구시가를 남긴 라구사 공화국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건너온 이탈리아인들이 주축이 되어 남슬라브인들과 함께 세운 나라로, 아드리아 해와 지중해 일대에서 활발한 무역활동을 하던 작은 나라이다. 아드리아 해에서 중요한 무역거점으로 성장한 라구사의 상인들은 발칸반도는 물론 이탈리아, 영국까지 진출하여 무역활동을 하였다.

라구사 공화국은 많은 나라 및 도시들과 협정을 맺은 후 세금을 내지 않고 중개무역을 하기까지 했다. 해양박물관의 터널같이 긴 전시실에 전시되고 있는 전시물들은 지중해로까지 뻗어나가는 이러한 두브로브니크 무역 역사의 산물이다.

전시실 벽면의 중세 지도에 표시된 라구사 공화국은 당시 두브로브니크 주변과 북부의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을 포함해 120km에 달하는 해안지역의 영토를 가지고 있다.

지도를 보니 아드리아 해안가의 정말 작은 나라였네. 이 작은 나라가 어떻게 강대국들 사이에서 영토와 국민들을 유지했지?
이 길다란 영토는 200개가 넘는 대상선의 상선단 뿐만 아니라 막강한 전투함대의 보유를 기본으로 하여 지켜나갈 수 있었지.

그런데 중세의 이 작은 도시국가가 더욱 특별해 보이는 점은 전투함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쟁 없이 모든 발전과 부를 평화로 이뤄냈다는 점이야. 라구사 공화국 사람들은 화려한 외교술을 통해 아드리아 해 해안의 이 땅과 섬을 얻고 영토를 넓혀나갔지.

라구사 공화국은 영리한 외교와 강인한 생존 노력을 통해 베네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생존해 나갔다. 당시 라구사 공화국은 바티칸의 교황과 오스만 제국의 술탄 사이에서 철저한 중립을 지켰고, 이로 인해 그들의 선박은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지중해까지 운항할 수 있었다.

이 박물관의 수많은 전시실에 전시된 이들의 역사를 보고 있으면,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이 라구사 공화국의 외교술을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해양박물관 각 전시실에는 선박의 여러 장치들이 마치 선박 위인 것처럼 꾸며져 있다. 선박의 방향을 바꾸기 위하여 사용하는 장치인 타(舵) 가 입구를 장식한 장방형 전시실은 마치 배가 되어 전진하는 것 같이 보인다.

타 의 뒤편에는 해상지도와 함께 다양한 해상장비들이 벽면이 가득 세워져 있다. 항로를 계산하던 자가 있고, 선박의 장비들을 다듬던 망치, 끌, 정 등이 이제는 박물관 유물이 되어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특히 19세기 중엽에 원양선박의 선원들이 사용하던 당시 최신형의 구급약은 당시 두브로브니크의 해상문화가 얼마나 앞서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요새 안에 지어진 해양박물관은 매우 넓어서 2층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19세기~20세기 중반에 유럽의 바다를 누비던 두브로브니크 해양의 역사가 담겨 있다. 선박 운용 방식과 함께 선박 정비, 선박공학, 수산업 등 두브로브니크가 자랑하는 해양의 전시물들은 끝이 없다.

박물관을 나오려다 보니, 이 도시에서 제일 큰 박물관이어서인지 흔하지 않은 무료 화장실이 박물관 입구 앞에 있었다. 이 화장실에 아내가 들어가려고 하였더니 박물관의 아주머니 관리인이 무뚝뚝하게 말을 건다.

박물관 입장 티켓을 보여주세요. 화장실 가려면 박물관 티켓이 꼭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박물관 입장객인 줄 모르고 화장실을 몰래 이용하려는 얌체인지 확인해 보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우리가 박물관 티켓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다행히 우리가 박물관 입장할 때에 티켓을 확인했던 다른 관리인이 와서 이 아주머니 관리인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자 이 아주머니 관리인은 두 손을 모으면서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에 무료 공공화장실이 별로 없고 화장실 입장료를 받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화장실 갈 때마다 돈을 내고 확인을 받는 이곳의 문화는 아직도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화장실 인심이 후한 우리나라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다.

나와 아내는 박물관을 나온 후, 두브로브니크 성벽을 끝까지 돌았다. 우리는 결국 성벽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민체타 타워(Minčeta Tower)까지 올라갔다. 꽤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올라, 크로아티아 국기가 나부끼는 성벽의 정상에 올라섰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발 아래 풍광에 감탄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꽤 긴 성벽을 오르내리는 답사를 마친 아내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본격적인 유럽여행 첫날이어서 시차가 적응되지 않은 데다가 대낮에 트래킹 수준의 성벽 오르기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아내가 시원한 크로아티아 맥주를 평소 주량보다 많이 마셔서 몸에 이상신호가 온 것이다.

아내는 팔을 들어 성벽에 기대더니 머리를 숙였다. 나는 아내가 편히 성벽 앞 바닥에 앉도록 하였고 준비해갔던 시원한 생수를 건네주었다. 아내는 주저앉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성벽 요새의 바닥에 몸을 붙였다. 다행히 우리가 있는 타워의 바로 아래 층에는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옷을 입은 응급구호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 바로 옆에는,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요새 아래의 풍경을 감상하며 사진들을 찍고 있었다. 아내의 몸 상태가 걱정되면서도 주변 풍경은 더 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여러 가지 감정이 두브로브니크 성벽 최정상에서 교차되었다. 나는 아내가 무리해서 움직이지 않고 이곳에서 한참 쉬다가 성벽을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주변에서 우리 부부를 인식하는 각국 여행자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가장 적극적으로 우리 부부에게 표현을 하는 여행자는 주변 유럽국가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할머니들이었다. 그들은 아내에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진정한 마음이 그들의 표정에서 느껴졌다.

몸 괜찮아요? 여기에서 이렇게 쉬고만 있어도 괜찮을까요?

전혀 모르는 사람을 보며 걱정하는 할머니들의 표정은 먼 이국에서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 주었다. 수많은 인생의 날들을 보냈을 할머니의 마음이 가슴 속에 들어와 닿는 듯 했다. 그 마음 씀이 두브로브니크의 진주 같은 풍경보다 더 깊게 다가왔다. 인간에게 가장 감동을 주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을 이 정상에서 다시 느껴보게 되었다.

자유여행. 우리는 급할 게 없었다. 두브로브니크 최정상의 바람을 한참 동안 맞으며 나와 아내는 계속 휴식을 취했다. 그동안 수많은 여행객들이 우리 주변의 성벽에 와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지나갔다.

한동안 휴식을 취하자 아내의 몸은 이내 회복되기 시작했다. 20년 넘게 같이 살아와 이제는 함께 여행하는 아내의 몸 상태를 느끼고 내 발걸음을 언제라도 멈추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몸 상태가 회복된 아내와 나는 크로아티아에서도 이름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다시 우리에게 크로아티아의 평화가 찾아왔다. 성벽 위에 스치는 바람이 다시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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