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1 Nov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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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 15 days ago

지리산 속 부처가 앉아계신 터 , 바로 이곳입니다


지리산에서 내가 제일 먼저 가고 싶은 곳은 거대한 전나무가 우뚝 서 있는 금대암이다. 금대암 무량수전 밑 산비탈에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거대한 전나무는 하늘에서 뚝 떨어져내려 마치 지리산을 떠받치듯 곧게 서 있다. 금대암이 지리산의 장엄한 파노라마를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라는 것도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마력처럼 끌어당기는 힘은 거대한 금대암 전나무다.

이번 지리산 여행도 금대암 전나무를 먼저 보기 위해 금대암에서 가까운 산내면에 숙소를 정했다. 딱히 금대암이 아니더라도 산내면 인근에는 뱀사골계곡을 비롯해 달궁계곡, 칠선계곡, 백무동 등 아름다운 계곡이 골골이 진을 치고 있다. 게다가 유서 깊은 실상사를 비롯해 벽송사, 서암정사, 백장암 등 볼거리가 차고 넘친다.

다음날 아침 나는 거동이 불편한 세 보살님들을 모시고 금대암으로 오르기 위해 숙소를 출발했다. 물안개가 짙게 서린 임천 계곡에는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와 계곡 사이사이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이 절묘하게 어울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단풍에 넋을 잃고 잠시 정신 줄을 놓는 사이 앗, 불사! 그만 금대암 입구를 지나치고 말았다.

운전을 하는 사람은 항상 정신줄을 놓지 말라는 아내의 지엄한 잔소리를 명약으로 듣고, 한참을 가다가 차를 되돌려 지리방장제일금대 라는 길가 표지석에서 꺾어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가파르게 올라갔다. 지리산 자락에서 2년 동안 살고 있었을 때 몇 번 찾아왔던 길이건만 오를 때마다 생소하게 느껴졌다. 계절이 다르고 날씨가 다른 탓일까?

금대암으로 오르는 길은 순례자의 자세로 경건하게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데... 승용차를 타고 소음과 기름 냄새 풍기며 고요한 산사의 정적을 깨고 올라가자니 길섶에 핀 들국화며 주변의 식물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무들아, 미안해.

거의 수직으로 구부러진 가파른 길을 한참을 헉헉대며 올라가자 금대암으로 이어지는 평탄한 길이 나왔다. 이른 아침 금대암은 적막 그대로다. 짧은 숲길을 지나자 이윽고 지리산의 장엄한 파노라마가 손에 잡힐 듯 펼쳐졌다.

아아~ 아아아~ 아아~ 아아아!
오오~ 오오오~ 오오~ 오오오!
와우와우~ 오우오우~ 하아 하아 하아!

무슨 말이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세 보살님들은 눈앞에 펼쳐진 지리산의 장엄한 파노라마를 바라보며 거의 신음에 가까운 탄성을 자아냈다. 지리 제일봉인 천왕봉(1915)을 중심으로 중봉, 하봉, 제석봉, 장터목, 연하봉, 촛대봉, 세석산장, 영신봉, 칠선봉, 덕평봉 등 준봉들이 서로 다투며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 펼쳐져 있다.

금대암은 금대산(851m) 자락 해발 800m가 넘는 벼랑에 서 있다. 금대(金臺) 라는 이름은 금빛을 띤 연화대로 부처가 앉아계신 터 를 일컫는다. 지리산 천황봉을 바라보고 양지바른 가파른 언덕에 둥지를 틀고 있는 금대암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부탄의 탁상사원(Taktsang Palrhug)에 온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호랑이 둥지(The Tiger s Nest)로 더 알려진 탁상사원은 부탄 파르타 계곡 해발 3120m 고도, 깎아지른 900m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탁상사원은 부탄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 순례지로 파드마삼바바가 3년 3개월 3일 3시간 동안 명상 수행을 했다는 동굴에 세워져 있다. 금대암은 탁상사원(1692년)보다 훨씬 이전인 656년(신라 태종 무열왕 3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마에 잠시 숨을 고르고, 한걸음 더 들어가니 무료 차 한 잔 하세요 라는 문구 옆에 커피 포트와 인스턴트 봉지 커피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평상 위에는 감을 실로 꿰어 말리고 있었는데, 분홍색 감 사이사이로 지리산의 파노라마가 마치 영화 속의 스크린처럼 지나갔다.

가파른 언덕을 오느라 잔뜩 긴장을 해서인지 목이 말랐다. 평상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시며 찻상을 살펴보니 금대암 전나무를 배경으로 새긴 주지 스님의 명암이 놓여 있었다.

말의 화살을 가벼이 던지지 말라. 한번 사람의 귀에 박히면 힘으로는 빼낼 수 없다.

주지 명암 뒷면에는 적혀 있는 말이다. 간담을 서늘케 하는 글귀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이 짓는 십악 중 말로 짓는 구업이 네 가지나 된다. 거짓말이나 헛된 말(망어),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악구), 이간질하는 말(양설), 진실이 없는 꾸민 말(기어) 등.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아무렇게나 하는 사람들이 새겨들을 일이다.

커피를 마시고 한걸음 더 들어가 무량수전에 다가서니 발아래 거대한 전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서 있다. 500살이 넘은 거대한 전나무다. 높이 40m, 둘레 2.92m, 금대암의 상징이 돼버린 전나무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전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원래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 하나는 벼락을 맞아 죽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리산을 떠받치듯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전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우주목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전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나갔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가장 신성하게 느끼는 순간은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을 걷거나, 거대한 노거수 밑에 앉아 휴식을 취할 때다. 또 가장 성스럽게 여겼던 순간은 어릴 적에 어머님께서 목욕재계 하시고 당산나무 밑에 지푸라기를 깔고 그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무릎을 꿇은 채 경건하게 치성을 드리는 모습이었다.

어머님이 정성을 드려 치성을 드리는 당산나무는 동네사람들이 가장 신성시 했던 신앙의 대상이었다. 거대한 당산나무의 실재는 생명의 근원이며, 지혜의 원천이 되는 생명의 나무 같은 존재였다. 생명의 나무와 관련된 신앙은 여러나라의 신화와 의례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 구약성서 lt;창세기 gt;에는 에덴동산 한가운데 두 나무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북유럽의 신화에 등장하는 위그드라실은 뿌리가 지구의 중심까지 뻗어 있기 때문에 지구를 떠받치는 중심축이며, 생명의 샘이 곁에 있다고 한다. 인도의 오래된 문헌에는 우주가 커다란 나무로 묘사되어 있다.

lt;우파니샤드 gt;에서 우주는 하늘에 뿌리를 두고 땅 위에 가지를 드리운 거꾸로 서 있는 나무다. 이 나무는 신 브라만을 상징한다. 불타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는 원래 인도의 종교 전통에서는 지혜의 나무이자 우주목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화인 단군신화에는 환웅이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인간을 다스렸다는 내용이 있다. 신단수는 태백산 꼭대기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있고, 태백산은 세계의 중심이며, 신단수는 이 산의 정상에서 하늘과 맞닿은 채로 서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나무는 그리스도 탄생 이전부터 지구상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나는 가파른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거대한 전나무 앞에 섰다. 고개를 꺾어 밑동에서부터 찬찬히 올려다보니 그 끝이 하늘에 닿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나무에게 합장을 하고 나무야, 고마워! 라고 속삭이며 인사를 했다.

나무는 내 인사에 응답이라도 한 듯 때마침 불어오는 소슬한 가을바람에 나뭇가지를 흔들며 우우우~ 하고 소리를 냈다. 또 한편으로는 윙윙 소리를 내며 대자연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질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지구상에 나무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곧 지구는 사막화돼 산소가 희박해지고 모든 생명체는 점점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이 지구는 숲을 파괴하고 무차별하게 나무를 잘라내어 점점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나는 전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가 둘러진 주위를 세 바퀴 돌며 나무에게 경건하게 경배를 올렸다. 그리고 무량수전에 올라가 오체투지 삼배를 하고 잠시 입정에 든 후, 무량수전 뒤에 있는 나한전으로 올라갔다. 금대암은 도선국사가 나한전을 지어 중창을 한 뒤 영험한 나한도량으로 이름이 났다. 이 나한전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 한 가지는 무조건 들어준다는 소문이 나 있다.

그러나 나는 나한전에 소원을 빌기보다는 나한전 옆에 거대한 너럭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전나무 위로 펼쳐진 장엄한 지리산 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금대암에 오거든 꼭 이 너럭바위에 앉아 지리산을 바라보아야 한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가슴이 탁 트이고 모든 번뇌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저 아래 서 있는 전나무의 끝이 너럭바위 위까지 뻗혀 올라왔다. 얼마나 뿌리가 깊이 뻗었을까? 메마른 비탈 위에 이처럼 무한하게 생명의 손길을 뻗혀주다니!

보살님들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너럭바위 위에 올라와 조용히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가 시간이 우리를 내려가게 했다. 이곳 금대암에서 며칠 묵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C 보살님을 부축하며 너럭바위를 조심스럽게 내려오는데 보살님이 감격에 겨워 곧 눈물이 날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찰라님, 마치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소. 우린 꿈을 꾸고 있는 것이요. 밤에 꾸는 꿈도 꿈이요. 낮에 사는 것도 한바탕 꿈이 아니겠소?
찰라님 덕분에 이렇게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곳을 오르다니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내 덕이 아닙니다. 저 전나무가 나를 끌어들였고, 보살님은 전생에 좋은 업을 지어 이곳까지 오게 된 것 아니겠소?

너럭바위에서 조심스럽게 암자 마당으로 내려오는데 꼭 극락정토를 걷는 느낌이 들었다. 적막한 산사에는 가끔 바람소리만 윙윙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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