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1 Nov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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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 13 days ago

사투리는 과연 깨끗한 우리말일까

글 쓰는 일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서 언젠가는 이오덕이 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오덕은 우리 말을 지키던 큰 느티나무 (김경희)라고 불릴 만큼 우리말을 바로 쓰는 일에 평생을 바쳤고,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그가 쓴 책을 글쓰기 교본 삼아 읽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이오덕의 lt;우리 문장 쓰기 gt;를 읽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이 책이 말하는 우리 문장 이 과연 2018년을 살아가는 한국인이 추구해야 할 좋은 문장인가? 이 책이 오늘날 좋은 글쓰기 교본으로 추천할 만한 책인가?

외국어 섞어 쓴 글은 반민주의 글

이오덕이 우리 문장 쓰기 를 논할 때 그가 말하는 우리 문장 은 깨끗한 우리말 로 쓴 문장이다.

그는 우리 문장 이 더럽혀지면서 글이 일반 대중의 삶과 괴리됐다고 지적한다. 유식한 사람들이 한자, 일본어, 영어 등을 지나치게 많이 쓰다 보니 글쓰기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것이다. 그에게 깨끗한 우리말 을 쓰지 않는 글은 곧 반민주의 글 이다.
중국글자를 섞어서 쓴 글은 반민주의 글이다. 그리고 쉬운 우리 말이 있는데 그런 말을 안 쓰고 어려운 말, 보통 사람들이 잘 안 쓰는 말, 유식한 중국글자말이나 일본글에서 나온 말, 쓰지 않아도 되는 서양말을 쓴 글은 모두 반민주의 글일 수밖에 없다. - lt;우리 문장 쓰기 gt; 198쪽
결국 글을 바로 잡는 일은 곧 우리 말을 우리 말법대로 써서 말을 살리는 것 (51쪽)이라는 게 이오덕의 주장이다.

사투리는 깨끗한 우리말?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오덕 자신도 인정하듯 이미 너무 많은 한자어, 일본어, 영어 등이 들어와 있는데 어떻게 깨끗한 우리말 을 쓸 수 있을까.

이오덕은 깨끗한 우리말 을 쓰는 방법의 하나로 겨레의 삶이 배어 있는 말, 가장 믿을 수 있는 우리 말 (193쪽)인 사투리를 쓰자고 제안한다. 그는 사투리에는 한자어, 일본어, 영어 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투리에서도 외국어의 영향은 찾아볼 수 있다.

국어학자 이익섭은 제주도방언은 몽고어와 일본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 말한다. 제주도방언에는 붉은 말(赤馬), 검은 말(黑馬), 얼룩말(班點馬)등을 가리키는 말이 따로 있는데, 이는 몽고어의 영향으로 보인다. 쟈왕(밥공기), 간대기(풍로), 후로(목욕탕), 이까리(돛) 등은 일본말의 영향을 받은 단어로 보인다( lt;국어학개설 gt; 362~363쪽 참고).

제주도방언에 남은 외국어의 흔적은 이오덕이 말하는 깨끗한 우리말 이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수가 적고, 따라서 깨끗한 우리말 을 쓰기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한자어는 말을 풍부하게 만든다

우리말이 다른 나라 말의 영향을 받고, 다른 나라 단어를 빌려 쓰는 일을 모두 변질 이나 오염 으로 볼 수 있는지도 문제다. 적어도 이오덕이 lt;우리 문장 쓰기 gt;에서 든 예 중 일부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

이오덕은 웃다 가 미소하다 , 만나다 가 상봉하다, 해후하다, 조우하다 라는 뜻으로 바뀌는 현상을 가리켜 말이 변질했다고 말한다(46쪽). 이오덕은 또 다른 대목에서도 영원의 미소 는 영원한 웃음 이라고 말한다(195쪽).

하지만 웃다 와 미소하다 는 엄연히 다른 말이다. 미소 는 작을 미 , 웃음 소 로 이뤄졌기 때문에 웃음 으로 바꾸면 작을 미 가 담고 있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다. 웃음에는 미소 외에도 실소, 냉소, 고소, 조소, 파안대소, 폭소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미소 를 웃음 으로 바꾸면 그 웃음이 미소인지, 실소인지, 냉소인지 알 수 없다.

미소 를 작은 웃음 으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 작은 웃음 이 미소 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미소 는 소리 없이 빙긋이 웃음. 또는 그런 웃음 이란 뜻인데 작은 웃음 이라고 쓰면 작게 소리 내 웃음. 또는 그런 웃음 이라는 의미로 오해할 수 있다.

만나다 역시 상봉하다 라면 모를까 해후하다 , 조우하다 와는 뜻이 다르다. 해후하다 는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뜻밖에 다시 만나다 , 조우하다 는 우연히 서로 만나다 는 뜻이다. 수많은 만남 중에서도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날 때 해후고, 우연히 만나야 조우다.

이오덕은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한자는 조어력(造語力·말을 만드는 힘)이 뛰어나 우리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세한 의미 차이를 담은 말을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자어는 우리말을 풍부하게 만들고, 섬세한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깨끗한 우리말에 대하여

깨끗한 우리말 을 너무 중시하다 보면 대중이 쓰지 않는,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언어를 쓰게 될 수도 있다. 일례로 이오덕은 한자어 뒤에 -리 를 붙여 쓰지 말아야 한다며 극비리에 를 극비밀로 , 절찬리에 를 절찬속에 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일상에서 극비밀로 , 절찬속에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문법 용어를 우리말로 표현한 부분도 심각하다. 이오덕은 동사를 움직씨 , 과거완료를 지난적 끝남때 , 과거진행완료를 지난적 나아가기 끝남 때 등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설명이 없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다음 인용에서 괄호 안 설명이 없으면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스럽다.
우리 말에 임자말(주어)이란 것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움직씨(동사)가 어떻게 많이 쓰이고 있는가? 그 움직씨의 끝바꿈에서 마침법의 여러 가지 모양(종결어미)은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대이름씨(대명사)는 어떤 것이 쓰이는가? 매김자리로(관형격조사) -의 는 있는가 없는가? - lt;우리 문장 쓰기 gt; 71쪽
이오덕의 lt;우리 문장 쓰기 gt;는 분명 장점이 있는 책이다. 글이 보통 사람들의 삶과 괴리된 현실을 지적하는 내용은 의미 있고, 귀 기울일 만한 대목도 여럿 있다.

하지만, 정작 이오덕이 강조하는 우리말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얼마나 맞닿아있는지를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칼럼니스트 고종석은 lt;감염된 언어 gt;에서 언어민족주의자의 상당수는 민중주의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는데, 사실 언어에 관한 이들의 실천은 극단적으로 반민중적이다 (101쪽)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오덕의 lt;우리 문장 쓰기 gt;를 읽으면서 아쉬움이 남았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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