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15 Nov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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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ib.co.kr - 6 days ago

동토의 눈보라에도 선열의 애국 신앙 푸르렀다


내년은 3·1운동 100년이 되는 해이다. 각종 기념사업을 준비하는 등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하지만 독립운동의 발원지인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동북3성 지역은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2019년 3·1절을 앞두고 한민족평화나눔재단(이사장 소강석 목사)과 지난달 22∼27일 ‘연해주, 동북3성 항일독립 유적지-한민족순례’에 나섰다. ‘부동항’으로 불리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중국 옌볜, 중국 접경지 두만강(700리)과 압록강(800리) 1500리를 따라 선열들이 남긴 발자취를 좇아가는 여정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유럽의 정취와 다양한 문화, 먹거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최근 한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피와 눈물이 어린 독립운동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3·1운동 이전부터 수많은 의병과 독립지사들이 러시아 연해주 국경을 넘나들었다. 1937년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슬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항일투쟁의 본부는 당시 가장 큰 한인 거주지였던 블라디보스토크 외곽 라게르산 언덕 달동네에 조성한 독립운동의 중심지 신한촌(新韓村)에 있었다.

지난달 22일 순례단이 찾은 신한촌은 흔적도 없었다. 1만여명에 달하는 한인들이 거주했지만 지금은 기념탑만 외롭게 서 있다. 1999년 3·1운동 80주년을 기념해 해외한민족연구소가 세운 기념탑은 각각 대한민국, 북한, 재외동포를 상징하는 높이 3.5m가량의 대리석 기둥 3개와 조선 8도를 상징하는 작은 돌 8개로 조성됐다.

가이드로 나선 김건수(62) 우수리스크 미르(평화)교회 선교사는 “예전에는 ‘서울 거리’라는 의미의 ‘서울스카야’였는데 지금은 러시아 영웅 이름을 딴 ‘하바로프스카야’로 불린다”면서 “자꾸 훼손되는 탑을 보존하기 위해 울타리를 두르고, 평소에는 자물쇠까지 채워 출입문을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약 100㎞ 거리에 있다. 발해의 5경 15부 중 하나인 솔빈부가 있던 곳이다. 지금도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로 대접을 받고 있다. ‘한국의 체 게바라’ 최재형(1858년∼1920)이 순국한 지역이다. 최재형의 삶은 영화나 드라마로도 부족할 만큼 드라마틱하다. 그가 처형당한 사베스카야 언덕엔 잡초만 무성할 뿐 표지판 하나 없었다.

그는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끝 모를 기근과 양반의 ‘갑질’이 극에 달할 때였다. 9세 최재형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연해주 크라스키노(얀치헤)로 이주했다. 빈곤은 국경을 넘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1세 때 가출했다. 상선 노동자로 선장의 총애를 받은 최재형은 무역회사 직원을 거쳐 군부대 통역관으로 일하며 고기 군납을 통해 연해주 최대 거부가 됐다.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은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1908년 의병 조직인 동의회를 만들고 2년 뒤엔 독립운동 단체인 권업회 초대회장으로 선출됐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배후에서 지원하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최재형은 1920년 4월 5일, 일본군이 벌인 ‘4월참변’에 희생됐다. 1962년 건국훈장을 추서했지만 아직도 그는 ‘잊혀진 영웅’이다. 그가 남긴 한마디는 순국 98년이 지난 지금도 비수처럼 다가온다. “러시아 추위보다 나라를 잃은 나의 심장이 더 차갑다.”

우수리스크 남쪽,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슬픈 강’이란 별칭을 지닌 수이푼강변엔 헤이그 특사이자 대한광복군 정부 대통령 이상설(1870∼1917)의 유허비(遺墟碑)가 외롭게 서 있다. 시신이 없는 유허비엔 누군가 놓아 둔 국화 몇 송이가 늦가을 비를 맞고 있었다.

우수리스크까지 동행한 이사장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정부 차원에서 ‘최재형 추모비 건립’을 추진해 달라고 요청했다”면서 “만약 정부의 예산 확보가 어렵다면 새에덴교회와 한민족평화나눔재단을 중심으로 한 민간 차원의 추모비 건립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당시 기독교 신앙은 애국신앙이었으며 민족을 지키는 신앙이었다”면서 “쓰러진 고목 역시 눈보라가 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있었기에 고통을 덜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해주에 고려인이 있다면 중국 만주 지역엔 조선족이 살아가고 있다. 이곳은 고구려 유적지와 항일투쟁 역사를 중국이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의 그림자가 농후했다.

훈춘에서 서쪽으로 1시간 거리의 투먼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남양과 마주하는 중국의 국경도시다. 한국독립운동사상 일본 정규군과 싸워 최초로 승리한 봉오동 전적지는 투먼에서 왕청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중국 지린성 옌볜 조선족자치주 주도 옌지서 약 30분 거리인 룽징시에는 명동촌이 있다. 명동촌에는 복원된 민족시인 윤동주 생가가 있고, 명동학교 옛터에는 기념관이 들어서 있었다. 입구에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적혀 있다.

명동촌 중심에는 윤동주의 외삼촌인 독립운동 지도자 ‘한국의 간디’ 김약연이 있다. 그는 1899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이주해 명동촌을 만들고 명동교회와 명동학교를 세워 기독교사상을 교육했다. 윤동주와 문익환 송몽규 나운규 등이 대표적이다.

1919년 3월 13일 옌볜 룽징에서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반일 시위가 일어났으며, 1920년 15만원 탈취사건,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 등 무장투쟁으로 이어졌다.

압록강변 지안시에는 광개토대왕릉과 고구려 국내성, 환도산성 등 고구려 유적이 가득했다. 하지만 화중지병에 불과했다. 광개토대왕릉비는 높이 6.39m로 거대한 유리관 안에 갇혀있다. 안에선 사진도 못 찍게 했다.

장군총(장수왕릉)에서 한국어로 설명중인 가이드에게 중국 공안 경찰이 “말을 하지 말고 둘러보기만 하라”고 고함을 질렀다. 순례단은 지안과 투먼 외에도 백두산 천지, 훈춘, 단둥 등 북한과 인접한 접경 지역을 탐방하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 자들은 그것을 되풀이하기 마련’이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룽징·우수리스크·블라디보스토크=글·사진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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