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17 Nov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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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 8 days ago

수능 앞두고 부모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사찰


남도의 만추가 화려하게, 곱게 펼쳐지고 있다. 입동이 지나고, 가을비도 촉촉하게 내렸다. 대학수학 능력시험도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수능시험을 볼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많이 찾는 사찰이 있다. 가을 단풍의 절정을 뽐내고 있는 해남 두륜산 대흥사다.

대흥사는 이맘때 많은 학부모들이 찾아서 수험생들의 좋은 성적을 비는 기도를 올리는 절이다. 두륜산의 산정에 누워있는 비로자나 와불도 소원을 비는 기도의 대상이다.

올려다봐야 만날 수 있다

대흥사 와불은 무심코 지나치면 볼 수 없다. 절 마당에서 와불을 생각하며 산정을 올려다봐야 한다. 산정에 얼굴과 몸, 다리까지 확연한 비로자나불이 누워있다. 이 와불이 신통함으로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전라도 천년수 로 지정된, 만일암 터의 천년나무와 북미륵불도 기도를 들어준다고 알려져 있다. 천년나무는 수령 1100년의 느티나무다. 북미륵불은 천년나무에 얽힌 천동과 천년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와불과 천년나무, 미륵불도 있지만, 많은 학부모들의 소원을 담은 촛불은 연리근에서 타오르고 있다. 연리근은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 침계루 앞에 있다.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의 뿌리가 만나서 하나가 된 나무다. 키가 20m, 나무 둘레가 4.4m에 이른다. 높이나 품세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면서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나무는 절 안에 있다. 뿌리가 한데 붙어서 행운을 가져다주고, 소원을 들어준다고 전해진다. 두 남녀의 지극한 사랑에 빗대 사랑나무 로도 불린다. 이 나무 아래에, 수많은 중생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켜놓은 촛불이 타고 있다. 수능시험을 볼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기도다.

대흥사는 유서 깊은 절이다. 백제 때 창건된 도량이다. 정관존자가 세웠다, 아도화상이 세웠다,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여러 고승들에 의해 중건을 거듭하면서 교종과 선종을 아우르는 큰 도량이 됐다. 보물과 천연기념물 등 유물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차로 유명한 일지암과 북미륵암, 남미륵암, 진불암, 관음암, 청신암 등 암자도 많다. 삼보사찰의 하나인 송광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선암사와 함께 호남의 5대 사찰로 불린다.

불가에서 전해지는 재밌는 말도 있다. 대흥사에서 염불 자랑하지 말라는 얘기다. 송광사에선 계율을, 선암사에선 문장을 자랑하지 말라는 말과 닿아 있다. 백양사에선 인물 자랑을, 화엄사에선 주먹 자랑을 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송광사는 승보사찰로 16국사를 배출한 절이다. lt;무소유 gt;의 저자 법정스님도 송광사에 오래 머물렀다. 계율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생긴 이유다. 선암사에서는 빼어난 학승이 많이 배출됐다. 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도 선암사 스님(시조작가 조종현)의 아들이다.

화엄사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은 임진왜란 때 승의병들이 맹활약하면서 생겨났다. 호국불교를 실천한 절이다. 대흥사는 장엄한 불교의식을 중시하면서 13대종사와 13대강사를 배출했다. 시·서·화·차에 능했던 초의스님도 대흥사에 오래 머물렀다.

추사가 유배 가는 길에 들른 곳

대흥사의 당우에 걸린 편액도 눈여겨봐야 한다. 대흥사의 편액은 조선시대 명필가들이 쓴 것이 많다. 무량수각의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서산대사의 유품이 보관돼 있는 표충사의 편액은 정조대왕이 직접 써서 하사했다. 대웅보전은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진다. 당초 대웅보전에는 원교 이광사가 쓴 편액이 걸려 있었다. 1840년 제주도로 귀양 가던 추사 김정희가 친구 초의선사를 만나러 대흥사에 들렀다. 글씨를 안다는 사람이 이런 글씨를 아직도 걸어놓고 있냐 며 원교의 글씨를 내리게 하고, 자신이 글씨를 써주며 걸도록 했다. 무량수각의 편액도 그때 써줬다.

당시 이광사는 자연과 어우러진 자주적인 글씨, 동방의 진짜 글씨를 주창하며 동국진체를 완성한 서예가였다. 김정희는 그 이전 명·청나라의 글씨가 진짜 글씨라고 주장했다.

추사는 8년 여의 제주 유배에서 풀려나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렀다. 유배 길에 써준 자신의 글씨를 떼고, 원교의 편액을 걸도록 했다. 이광사의 편액이 걸렸다 내려졌다, 다시 걸리는 곡절을 겪었다. 추사가 제주도 귀양에서 수없는 나날을 고뇌하며 겸손의 미덕을 많이 배우지 않았을까 싶다.

대흥사의 가을 풍광도 아름답다. 낙엽과 어우러진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매표소에서 절까지 4㎞가 숲으로 터널을 이루고 있다. 십리숲길 이라 부른다. 아홉 굽이로 이어져 있다고 구림구곡 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숲 터널이 지금 노랗고, 빨갛게 그리고 주홍빛으로 물들어 황홀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틀간 내린 가을비와 바람으로 낙엽도 수북하게 쌓여 만추의 서정을 선사한다.

숲길에서 만나는 경물도 애틋하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쓰이는, 예전 집단시설지구 자리는 1980년 광주민중항쟁 때 시민군들이 내려와서 묵었던 곳이다. 광주로 다시 올라가는 시민군에게 주민들이 김밥과 음료를 건네며 격려했던 공간이다. 5·18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400년 묵은 전통 한옥여관 유선관은, 오래 전 절을 찾은 신도나 수도승들의 객사였다. 청태 낀 기왓장과 색깔 바랜 나무기둥이 고풍스런 옛집이다. 일주문을 지나서 만나는 부도밭도 운치 있다. 대흥사를 일으킨 서산대사와 초의, 만해 등 13대종사와 13대강사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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