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1 Nov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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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ib.co.kr - 12 days ago

“오늘도 찾아온 전 남친…‘안전이별’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때 벗어나지 못했다면…. 지금 자물쇠가 채워진 집에 갇혀 있었을 거예요.”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한 뒤 스토킹에 시달렸던 A씨(32)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갑갑해진다고 했다. A씨는 지난 7일 전화 인터뷰에서 8년 전 당했던 ‘이별범죄’의 전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동물을 학대하듯 사람을 학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고 “나는 다른 연인에 비해 ‘덜 사랑했기에’ 데이트폭력과 사랑을 구별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이별 통보 후, 일상은 공포가 됐다”

시작은 사소한 간섭이었다. SNS 계정의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남자친구 B씨의 장난 섞인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했다. 며칠 후 접속해보니 친구 목록에서 남자는 전부 삭제돼 있었다. 말도 없이 A씨 계정을 ‘관리’한 B씨는 그가 이성친구의 SNS에 남긴 댓글을 보고 “바람을 피우느냐”며 난리를 쳤다. A씨가 남자 직원이 많은 회사로 이직하면서 집착은 더 심해졌다. A씨는 “회식 있는 날에는 수십 통씩 전화를 해댔다. 내 회사생활이 그에겐 전부 의심의 대상이었다. 싸우고 빌고 또 싸우는 일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결국 이별을 선택했다. 결별을 통보하자 돌아온 건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이었다. A씨는 “나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피가 말랐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만남을 거부하며 지내던 어느 날 B씨로부터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어’라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회사에 몰래 찾아와 감시하다 A씨가 웃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보낸 거였다. 회사 건물에서 B씨와 마주쳤을 때 숨이 턱 막혔다. 그는 “화도 나고 겁도 났다.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거란 생각에 일상은 공포가 됐다. 말라 비틀어져 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B씨의 집착은 결국 피를 보고 말았다. “그만 포기하라”는 B씨 동생의 말에 B씨가 격분해 주먹을 휘둘렀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얼굴뼈와 손뼈가 부러질 정도로 싸움은 격했다고 한다. A씨는 “나한테도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며 B씨에게서 벗어나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B씨가 알고 있던 자신의 모든 것을 바꿨다. 휴대전화번호를 새로 만들었다. 이사도 했다. 근무처도 다른 지점으로 옮겼다. B씨와 함께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의 교류도 끊었다. 그래도 ‘그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A씨는 “이별범죄자는 상대방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결별이나 이혼을 키우던 개가 도망간 걸로 취급한다. ‘내 것’이라 생각한 존재가 내 손에서 벗어나니 화가 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이별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에선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8 이별공식=안전+폭행+충격

‘서울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 등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폭행, 살해하는 이별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시민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데이트폭력 사건은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많아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더 크다. 더구나 ‘강서구 사건’의 피해자 이모(47)씨가 전 남편 김모(49)씨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살해돼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김씨는 ‘헤어지는 과정에서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이씨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이씨는 두 차례 경찰에 신고해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지만, 김씨는 태연히 살인을 저질렀다.

이별범죄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족, 주소 등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친밀했던 관계가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이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자신을 너무 잘 안다는 공포에,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범행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는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경험하며 일부는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장기간 우울증이나 불안 증상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이별범죄의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지만 격리조치, 피해자 보호 등을 할 수 있는 관련 법안은 미비해 경찰이 사전에 개입할 근거가 없다.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사법처리를 하는 경우가 반복되면서 이별범죄의 위협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안전이별’을 고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안전이별’은 물리적·정신적 폭력을 당하지 않고 헤어지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다. 다음소프트가 실시한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안전이별’에 대한 검색량은 2015년 8000여건에서 2017년 2만4000여건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이별’ 하면 생각나는 단어도 ‘슬픔’에서 ‘안전’으로 바뀌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서로에게 ‘안전이별을 하셨습니까’를 안부처럼 물어볼 만큼 데이트폭력은 여성에게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다들 안전이별 하고 계십니까”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안전이별을 고민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SNS에 ‘안전이별’을 공유하며 안부를 묻는다. 윤김지영 교수는 “가장 친밀했던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해 본인뿐 아니라 본인 가족이나 지인에게까지 폭행과 살인을 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안전이별’을 검색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C씨는 네이버 카페에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강제로 집에 들어와 애를 만들자며 완력을 썼다. 겨우 돌려보냈는데 또 올까 걱정돼 친구 집으로 도망쳤다. 이사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회원들은 ‘휴대전화번호도 바꿔라’ ‘미안하다는 말에 흔들리면 안 된다’ 등 조언을 했다. ‘거액의 빚이 있다고 해라’ ‘불치병에 걸렸다고 해라’ 등 정이 떨어지는 행동을 해서 차이는 형식을 취하는 웃픈(웃기지만 슬픈) 방법들을 추천하기도 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목숨을 잃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7년 이혼·결별을 요구하거나 재결합·만남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17명의 여성이 살해됐다. 살인미수는 49건이다. 이는 최근 4년간 가장 높은 수치다. 연도별로 살해 및 살인미수 건수는 2014년 63건(살해 21, 살인미수 42), 2015년 64건(살해 17, 살인미수 47), 2016년 63건(살해 13, 살인미수 50)으로 꾸준히 발생했다.

가족, 친구 등 피해자의 주변인들도 심각한 피해를 겪고 있다. 2017년 피해 여성 외에도 자녀, 친인척, 친구, 재혼남성 등 4명이 목숨을 잃었고, 22명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전체 피해자 55명 중 이웃이 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자녀 8명, 부모·형제·자매 등 친인척 7명 등의 순이다. 연도별로 데이트폭력으로 인한 주변인 피해는 2014년 57건(살해 30, 살인미수 27), 2015년 50건(살해 23, 살인미수 27), 2016년 51건(살해 21, 살인미수 30)으로 조사됐다.

‘안전하게 이별하는 방법’

전문가들은 이별범죄 예방을 위해 경찰이나 성폭력·가정폭력 상담소 등 지원시설에 도움을 청하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상담소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신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경찰에 어떤 보호를 적극적으로 요청할 수 있는지 등을 상담사에게 충분히 듣고 같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해도 제대로 처리가 안 될 거다. 괜히 신고해서 가해자에게 보복만 당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꼭 경찰 신고뿐 아니더라도 데이트폭력 피해를 당하면 상담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윤김지영 교수는 “폭력을 당한 즉시 가해자와 분리될 수 있도록 1366 여성 긴급전화로, 보호조치를 받아야 한다”며 “자신이 폭력을 당한 상황을 지인에게도 알리고 경찰에게도 신고를 통해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피해자가 가해자에 의해 철저히 고립되는 상황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경찰과 시설의 도움을 받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데이트폭력’에 대한 법적 정의조차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처벌 수위는 가볍고, 격리조치와 피해자 보호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데이트폭력 관련 법안 5개를 발의했지만 간사들 간 협의조차 이뤄지지 않아 통과가 미뤄지면서 처벌 규정이 마땅치 않은 탓이다. 이에 대해 윤김지영 교수는 “피해자가 자구책으로 이별범죄를 막을 순 없다”며 “데이트폭력을 예방하고 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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