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1 Nov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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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ib.co.kr - 12 days ago

[빛과 소금-전정희] 봉지커피만 파는 카페


서울 구로초등학교 교문 앞 골목에 아담한 카페가 있습니다. ‘아홉길사랑 구로’라는 카페입니다. 2012년 ‘서울시 아름다운 간판’으로 선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 카페에서는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습니다. 딱 한 종류 봉지커피만 팝니다. 뭐 할머니들이 드시는 그 봉지커피가 떠오른다면 딱 맞습니다. 이 봉지커피를 싫어하면 먹지 않아도 타박하지 않으니 마음껏 이용해도 되는 곳입니다.

이곳 카페 오후는 자녀를 데리고 가려는 학부모들로 북적북적합니다.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내 아이가 교문을 언제 나오나 지켜봅니다. 커피값은 내도 되고 안 내도 됩니다. 사실상 무료인데 이용자들이 이웃돕기에 써달라고 돈을 저금통에 넣고 가기도 합니다.

이 카페는 맞은편 아홉길사랑교회가 운영합니다. 어느 해인가 서울 남서부에서 아동 위해사건이 터진 후 학부모들이 조바심이 나 교문 앞에서 자녀 하교를 기다리자 교회가 그들을 위해 카페를 열었습니다. 아홉길사랑교회는 1960년대 말 가난한 동네에서 가난하게 출발한 교회였습니다.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많이 살았죠. 지금은 중국동포들이 이웃 동네를 중심으로 타운을 이루고 삽니다. 이 교회에도 20여명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50여년을 지켜온 이 교회는 이제 2000여명이 출석하는 지역 커뮤니티이기도 합니다.

카페 옆에는 이발관 분식점 피아노교습소가 입주한 허름한 3층 건물이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던 무렵 이 건물이 매물로 나왔습니다. 5부 예배까지 봐야 하는 상황에서 이 건물이 비싸더라도 사야 했지요. 교회는 매입을 서둘렀습니다.

한데 담임 김봉준 목사 등이 “우리가 좁게 예배드리자”며 매입을 중단했습니다. 이유는 매입과 동시에 이발관 분식점 피아노교습소 등이 생계를 잃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건물주도 안정됐고 예수 믿지 않던 세입자들도 교회에 출석합니다. 어느 해에는 교인을 위해 쌀을 싸게 파는 행사가 준비됐습니다. 이 또한 의논 끝에 취소했습니다. “조금 비싸도 동네 쌀가게를 이용하는 게 맞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쌀가게 주인이 감동받아 교회를 다니게 됐습니다.

이 교회는 요란한 전도행사를 하지 않습니다. 주차난 해소를 위해 교회 주차장을 개방하는 등 지역 커뮤니티 역할을 다할 뿐입니다. 주차장 개방하면 민폐 이용객들 때문에 힘든 거 아시죠. 교회는 그럼에도 10년째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의 역할은 김 목사의 목회철학이 많이 반영돼 있습니다. ‘실생활에 심어주는 신앙훈련’인 거죠. 몇 년 전 김 목사는 색다른 제안을 했습니다. ‘택시주일’입니다. 교회 올 때 자가용 놓고 택시 타고 오면 택시 기사에게 교회가 1만원을 주고 잔돈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인은 그 주일 헌금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교회 재정에 타격이 크죠. 지역 택시 기사를 돕고 환경을 생각하자는 취지에서 시행됐습니다. 또 어느 날은 시각장애인 한 사람을 위해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을 교회 전체에 설치했습니다. 출산장려금 지원과 지역공부방 운영도 같은 맥락입니다.

아, 여러 팩트 확인 중 잔잔한 감동이 또 하나 있더군요. 교회가 제공하는 사택을 목사가 거절한 겁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담임인 제가 사택을 받으면 다른 교역자들이 그만큼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 교회 젊은 전도사 세 분이 사택 생활을 합니다. 그들은 마음껏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일. 아홉길사랑교회 교인들은 전남 고흥의 미자립농촌교회 목사가 이끄는 대예배를 올렸습니다. 그 시각 김 목사는 그 농촌교회에서 10여명의 연로한 교인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도농 교회 교류 설교였지요. 시골교회 목사는 최고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후원이 이뤄졌고요.

김 목사는 공수부대 출신으로 애국정신이 투철합니다. 지뢰 사고로 11명의 동료가 폭사하고 혼자 목숨을 건졌죠. 판문점도끼만행 사건 때 투입되기도 했죠. 이때 2진이 문재인 대통령이었답니다.

우리 사회는 한국교회의 극보수화를 우려합니다. 보수는 예수의 복음을 복음답게 실천할 때 진짜보수가 됩니다. 아홉길사랑교회를 응원합니다. 샬롬.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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