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13 Dec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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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ib.co.kr - 30 days ago

[And 지역 리포트] 빛고을 ‘펭귄마을’을 아시나요


호남의 근대화를 주도한 광주광역시 양림동 한쪽이 소위 ‘펭귄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수년 전 불이 난 빈집의 흉한 모습을 가리기 위해 내붙인 폐품 활용 장식과 고물들이 그 뿌리다.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장식품과 알록달록한 고물들은 사진촬영에 안성맞춤인 시계벽으로 한순간 진화하더니 9·10·11통 200여 세대 절반 이상의 가옥과 골동품 등으로 이뤄진 펭귄마을로 불쑥 성장했다.

고장 나 멈춘 시계와 버려진 액자, 거울, 악기, 그릇, 전화기 등 형형색색의 생활도구 폐품으로 꾸민 골목길과 또 다른 골목길. 이곳은 어느새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의 카메라 앵글 속 단골손님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 선교사 유진 벨이 개화기인 1904년 정착해 기독교 유적이 밀집한 양림동은 역사문화마을로 먼저 알려졌지만 이제는 펭귄마을로 더 유명하다. 당초 버드나무가 울창한 데서 ‘양림(楊林)동’으로 이름 붙여진 이 마을은 요즘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양림 커뮤니티센터(관광안내소) 자리에 오래된 목욕탕 건물이 있었습니다. 2013년 어느 날 인근 빈집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난 후 검게 그을린 목재와 쓰레기 더미 등이 한동안 나뒹굴었죠. 눈에 거슬리는 게 싫어 트럭 2대 분량의 잔재들을 치우고 집 기둥을 철거한 뒤 폐품을 주워 벽에 붙이기 시작한 게 펭귄마을의 출발입니다.”

펭귄마을 촌장 김동균(65)씨는 “재미삼아 버려진 시계와 그림 등을 하나 둘씩 주워 불 난 집의 벽에 내걸고 다듬어 진열했더니 주민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좋았다”며 “구닥다리 취급을 받은 폐품들이 길거리 미술관의 주역으로 환영받는 게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얼마 뒤 집터는 깨끗이 치워졌고 마을 주민들이 고추 등 농작물을 공동 재배해 나눠먹는 ‘펭귄 텃밭’이 됐다. 김 촌장과 함께 가장 열성적으로 일하던 김종제(70)씨의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펭귄처럼 귀엽다고 해서 이웃들이 애칭을 붙여준 것이다. ‘펭귄 아재’로 불리는 김씨는 40여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항상 의족을 끼고 걷는다. 의기투합한 두 김씨와 마을 주민들은 이후 수년째 시간이 날 때마다 폐품과 골동품을 수집해 아기자기한 재활용 작품들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펭귄 마을을 가꾸는 중이다.

1900∼1910년대 개화기 건축물과 고택들이 어우러진 양림동 펭귄마을은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역사박물관이나 다름없다. 광주 번화가인 충장·금남로는 물론 중국의 3대 음악가로 불리는 정율성(1914∼1976) 거리, 사직 통기타 거리와 인접한 이곳에는 독특한 풍경을 배경삼아 사진 속에 추억을 남기려는 관광객들이 연 20만명 이상 찾아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2015년 11월 옛 전남도청 자리에 둥지를 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을 계기로 양림동은 낡고 허름했던 과거를 벗어나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깃든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엿가락처럼 늘어진 골목길을 따라 시간여행을 떠나는 이들은 병뚜껑과 깨진 항아리, 찌그러진 냄비와 주전자, 건반이 떨어진 피아노와 줄 끊긴 바이올린, 녹슨 실로폰 등의 폐품 소재 예술품에서 평온함과 안식을 찾는다. 관광객들은 다른 곳과 달리 전시품들을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만질 수 있다. 벽화를 훼손하지 않고 설치된 본래 모양을 심하게 망가뜨리지 않는 조건이다.

70∼80년대 당시 어린이들이 즐겨 먹던 다양한 주전부리 상점과 한옥 카페, 개인 미술관 등은 순전히 덤이다. 마을 입구에는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16세 소녀시절과 92세 모습을 형상화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고, 250여m 구간의 다닥다닥 붙은 골목길은 문화예술특화거리로 자리매김했다.

광주시와 남구는 2010년부터 기독교 유적과 개화기 건축물이 산재한 양림동을 역사문화마을로 지정해 육성하고 있다. 옛 전남도청이 남악신도심으로 옮겨간 후 활기를 잃어가던 이곳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다. 2013년부터 주민들이 펭귄마을을 일구자 시와 남구는 펭귄마을을 포함한 양림동 202-27 일원 12만9000여㎡에서 주거환경 개선을 추진 중이다. 당초 세운 어린이공원 조성계획은 2019년까지 35억원을 들여 관광객들의 공예체험을 위한 공예촌과 쉼터 등을 만드는 것으로 변경했다.

‘펭귄마을사랑모임’을 결성한 주민들도 최근 ‘추억의 DJ박스’를 설치하고 공중전화 박스를 활용한 대형 펭귄 조형물과 사랑의 우체통을 설치하는 등 관광활성화에 발 벗고 나섰다.

주민들은 마을을 관광객들이 머물 수 있는 명소로 만들기 위해 마을기업과 게스트하우스 등을 설립하기로 했다. 펭귄마을이 진정한 관광지가 될 수 있도록 선교역사 유산과 건축문화 자산 등에 관광 인프라를 추가하려는 것이다. 우선 펭귄 캐릭터도 만들고 이를 활용한 각종 기념품을 위탁 생산할 계획이다. 도시재생에 발맞춰 관광객은 물론 주민들도 쾌적하고 살기 좋은 마을을 가꾸자는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주민들은 펭귄마을이 광주신학대학 선교사 묘원과 유진 벨 선교기념관, 오웬기념관, 정율성 생가, 이장우·최승효 가옥, 3·1만세운동 태동지, 5월 어머니집, 사직전망타워 등 인근의 관광자원과 접목된다면 전국 최고 명소로 떠오르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림동 토박이인 펭귄마을 사진연구소 김수삼(61) 소장은 “내년 1월 착공하는 공예촌이 문을 열면 펭귄마을은 더욱 살기 좋은 동네가 될 것”이라며 “세계 각국 관광객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펭귄마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 한희원 ‘굿모닝 양림’ 축제 추진위원장
“양림동의 문화콘텐츠는 무궁무진합니다”

“광주의 예루살렘 양림동은 근대 역사유적의 보물단지입니다. 100여년 전부터 예술·문학이 동시에 꽃핀 광주 문화의 고색창연한 발상지이기도 합니다. 펭귄마을이 양림동의 정체성이나 정신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문화중심도시 광주에 맞는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2011년부터 가을 인문학축제 ‘굿모닝 양림’을 이끌어온 서양화가 한희원(64·사진)씨는 13일 “최고의 예술은 쉬우면서 동시에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며 “펭귄마을은 생활예술과 문학의 향기를 맡고 즐기는 장소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2003년 광주 남구예술회관 개관 당시 ‘거리에서 만난 문학과 미술’이라는 제목으로 양림동에 살았던 문학·미술인들을 소개하는 초대전을 가졌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양림동의 축적된 문화적 역량을 전국에 널리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한씨는 “왁자지껄하던 관광객들이 김현승 이수복 곽재구 시인과 음악가 정율성, 작가 조소혜의 흔적을 더듬고 그들이 추구한 예술 세계를 접하게 된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은 일”이라며 “양림동은 1910년대 개화기 이후 광주지역 교육·의료의 중심지로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인들이 한데 모여 살았던 곳”이라고 소개했다.

8년 동안 민간주도 축제 ‘굿모닝 양림’을 기획하고 추진위원장을 줄곧 맡은 한씨는 “펭귄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아시아 최대의 복합문화시설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도 방문하고 양림동에서 작품을 썼던 뛰어난 문학인들과도 작품을 통해 만났으면 한다”며 “개화기 서구문물의 통로가 된 양림동의 문화콘텐츠는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무궁무진하다”고 자신했다.

“어렵고 난해한 것만 예술이 아닙니다. 예술성만 고집하면 섬이 됩니다. 대중적이라고 해서 수준이 낮다는 건 편견입니다. 유튜브만 켜도 세계적 예술작품을 얼마든지 접하는 세상입니다. 수백 년이 흘렀어도 우리의 영혼을 위로하는 베토벤, 모차르트나 마네, 모네 작품만 봐도 그렇습니다. 펭귄마을은 자생적으로 태동한 예술촌으로 모두가 힘을 합쳐 육성해야 합니다.”

고인이 된 한경직 목사의 친조카이기도 한 한씨는 올해도 지난달 10일부터 31일까지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를 주제로 한 축제를 개최했다. ‘한희원 미술관’을 운영 중인 그는 양림동과 펭귄마을뿐 아니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동명동 카페거리 등을 동일한 문화벨트로 묶고 흥행요소를 추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씨는 “그동안 양림동에 살았던 예술·문학가들만 잘 알아도 누구 못지않게 예술·문학을 공부한 것”이라며 “펭귄마을과 양림동에서 한국의 대표적 문화예술인들과 정신적 교감을 나누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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