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2 Januar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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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ib.co.kr - 2 month ago

목사 40여명 배출한 신앙 산실 강화 교동교회… 119년 된 대들보가 ‘증거’


강화대교가 보이는 인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의 한 언덕에는 교동교회의 모체인 옛 교동교회가 있다. 교회는 1950년 6·25전쟁 당시 밥을 지어 피란민을 대접했다. 당시 109㎡(33평) 크기의 예배당은 갈 곳 없고 굶주린 500여명의 피란민으로 가득 찼다. 교동교회를 지켜온 여성들은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이들을 배불리 먹였다.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신 10:18∼19)는 성경 말씀을 실천한 것이다.

곽선희 소망교회 원로목사도 1·4후퇴 때 스무 살의 나이로 피란을 와 교동교회에 출석했다. 곽 목사는 교동에 머문 8개월 동안 새벽기도와 주일예배에 빠지지 않고 출석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교동교회 송밀례 권사가 손녀인 김은자씨를 곽 목사의 처로 주선했다.

교동교회가 지닌 나그네 섬김의 역사는 18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4품 만호를 지낸 지역유지였던 박동엽 선생은 배가 좌초돼 갈 곳이 없던 토마스 선교사 일행을 대접해 중국으로 귀환활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 전해진다. 허가 없이 입국한 외국인을 관가에 고발하지 않으면 참수당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의 자손들은 오늘날 7대에 이르기까지 교동교회 10대 목사인 박형남 목사 등 30여명의 목사를 배출했다.

14일 옛 교동교회를 찾았을 때 은행나무 너머로 토마스 선교사 일행이 탄 배가 좌초됐다는 쌍여바위가 내려다보였다. 박 선생의 손자인 박성대 장로는 권신일 목사와 함께 1899년 교동면 읍내리에 초대 교동교회를 세운다. 박 장로는 GH 존스(조원시) 선교사가 인천 내리교회에 개설한 한국감리회 신학회를 1895년 수료했다.

옛 교동교회 건물은 1933년 첫 교동교회의 대들보를 가져와 재건축한 것이다. 교회 안에는 당시의 대들보와 100여년 된 오르간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교회 종을 수탈해 일본으로 가져가려다 풍랑을 만나 다시 돌려놓은 일화도 있다. 그 종이 지금도 종탑을 지키고 있다.

교동교회는 교파를 초월해 많은 기독인을 길러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을 창안한 송암 박두성과 총신대 신학대학원 총동창회장인 박광재 광명 영광교회 목사가 박 선생의 후손이다. 기독교대한감리교회(기감) 고 정등운 감독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87대 총회장을 지낸 고 한명수 목사 등은 교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옛 교동교회는 건물만 남아있다. 기감 유지재단에 소속된 교동교회는 옛 교동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옛 교동교회 부지는 일반인이 소유한 상태로 오랜 세월 돌보는 이가 없어 훼손되기 직전이었다. 박 선생의 후손들과 곽 목사 등이 힘을 모아 2016년 교회 건물부터 수리했다. 부지 매입도 추진하고 있다.

박광재 목사는 내년 교회 설립 120주년을 맞아 기념관과 선교관, 선교사와 은퇴한 교역자가 쉴 수 있는 안식관 등을 만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박 목사는 “내년 40년 목회 사역을 마치고 은퇴한 뒤 옛 교동교회를 섬기다 훗날 기감 유지재단으로 헌납할 계획을 갖고 기도 중”이라며 “40여명의 목사를 배출하고 가난한 사람을 나그네처럼 섬긴 옛 선조들의 신앙 유산을 전수하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화=글·사진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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