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15 December 2018
Home      All news      Contact us      English
kmib.co.kr - 1 month ago

[역경의 열매] 손인웅 (16) 교인으로 목회자로… 반세기 넘게 덕수교회와 동행


덕수교회와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인생의 흔적이 굵게 남아 있는 곳이자 목회의 자리였다. 지금은 서울 성북구에 교회가 있지만 원래는 중구에 있었다. 교우들은 옛 예배당을 ‘정동 덕수교회’라 부르며 지금도 추억하고 있다. 교회가 있던 자리에는 조선일보 사옥이 들어왔다. 이 이야기는 별도로 소개할 예정이다.

나는 신학교에 입학했던 1964년부터 지금까지 덕수교회와 함께 살고 있다. 처음엔 교인이었다. 이후 교육전도사를 시작으로 전임전도사와 강도사, 부목사를 거쳐 1977년 담임목사가 됐으니 각별하다는 말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첫 정이 들었던 정동 예배당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다니던 교회였다. 그들이 지은 교회이기도 했다. 무척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줬다. 고향에 있던 내리교회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해방 후 최거덕 목사님이 불하 받아 덕수교회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유서 깊은 공간이었다.

교회와 만난 건 운명이었다. 대학 때 기독학생운동을 하면서 종종 서울에 올 기회가 있었다. 한 번은 정동제일교회 젠센홀에서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경북지역 수련회가 열렸다. 정동제일교회와 덕수교회는 이웃사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때 KSCF전국연맹 임원들이 우릴 만나러 왔는데 많은 수가 덕수교회 교인이거나 그곳 출신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생겼다. ‘서울에서 생활하면 꼭 덕수교회에 출석해야겠다.’ 임원들을 보면서 이런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덕수교회에 출석한 건 이런 인연과 다짐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최거덕 목사님이 청년들을 좋아하셨다. 그때부터 청년들이 바로서야 한국교회에 미래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매력에 이끌려 교회에 나온 것도 사실이다. 함께 있으면 푹 빠져들었다. 말씀도, 인품도 모든 면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그 시절 덕수교회엔 친구들도 있었다. 1962년 부산 해양대에서 열린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연합수련회에서 함께 목사가 되기로 서원기도를 했던 설삼용 안양제일교회 원로목사도 덕수교회 중등부 교육전도사로 있었다. 교회 분위기도 좋았는데 친한 친구와 함께 사역을 경험하는 건 큰 기쁨이었다.

나는 1969년부터 정식으로 교육전도사가 됐다. 그 무렵 최 목사가 피어선성서학원 원장이 되시면서 날 성서학원 안에 있던 야간 중·고교 과정 교사로 추천하셨다. 교사가 되지는 못했어도 재능을 썩히지는 않았다. 이 또한 감사한 일이었다.

1970년 신학교를 졸업했다. 나에겐 큰 산과도 같은 최 목사님은 교육전도사들에게도 설교를 하도록 기회를 주셨다. 믿고 맡겨 주셨다. 훈련을 시킨 것이었다. 이런 훈련이 훗날 목사가 돼서도 설교를 준비하고 교인들 앞에 서는데 큰 도움이 됐다. 목사님의 선견지명은 어린 교육전도사들이 목사로 훈련받는 데 자양분이 됐다. 지금도 그 분의 은혜를 생각하면 머리가 숙여진다. 목사님은 유독 내게 많은 기회를 주셨다. 이유를 물어 볼 수는 없었다. 그저 순종할 뿐이었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Related news

Latest News
Hashtags:   

목회자로…

 | 

덕수교회와

 | 
Most Popular (6 hours)

Most Popular (24 hours)

Most Popular (a week)

Sour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