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13 Dec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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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ib.co.kr - 23 days ago

“찬미가 찬양가 통해 서양음악 처음 알려”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서양 근대음악 확산의 축이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고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가 집대성한 ‘찬양가’는 정식 악보가 수록된 한국 교회음악의 시초였다.

연세대 신과대와 음악대는 20일 서울 신촌캠퍼스 원두우신학관 예배실에서 ‘연희전문학교의 음악교육과 기독교 정신’을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박종현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연구위원이 ‘언더우드의 찬양가와 근대 한국음악-한국교회 음악의 적응화의 관점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정통 장로교 파송이란 자부심이 강했던 언더우드 선교사는 1894년 한국 최초의 악보 찬송가인 찬양가를 발간했다. 1892년 감리교에서 출간한 ‘찬미가’가 있었지만 악보 없이 가사만 있었다는 한계를 극복하려던 의도였다. 박 위원은 “찬미가 찬양가를 거쳐 찬송가를 도입함으로써 한국에 서양음악이 처음 알려졌으며 찬송가는 기독교 공동체인 교회의 예배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핵심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정운형 연세학풍연구소 연구위원이 ‘연희전문학교의 음악: 한국인 교수의 역할과 음반 취입’을 소개했다. 정 위원은 한국 근대음악의 개척자로 불리는 현제명 교수를 비롯해 음악부장을 역임한 백남석, 남성 중창단 글리 클럽을 만든 김영환 교수에 대한 기록을 소개했다.

특히 1932년 현 교수의 주선으로 일본콜롬비아 축음기 주식회사에서 정식 음반을 취입한 연희전문 남성 사중창단은 전국 순회공연을 하며 ‘조선의 놀애(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는 당시 동아일보가 민족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진행한 음악 현상공모 당선작이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선 연세대 성악과 남성 복사중창단이 조선의 노래를 80여년 만에 재연해 불렀다.

권수영 연세대 신과대학장은 “1930년대 연희전문 중창단이 일본에 가서 취입한 레코드에는 교가와 응원가는 물론 저항정신이 담긴 흑인 영가와 찬송가도 들어있다”며 “음악을 통해 우울했던 식민지 청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던 의도”라고 말했다.

글·사진=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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