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10 Dec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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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ib.co.kr - 20 days ago

[역경의 열매] 손인웅 (20) 구석구석 답사 끝에 성북동 교회 시대 열어


덕수교회 담임목사가 되면서 한 가지 원칙을 정했다. 당회에서 다루는 모든 안건을 만장일치로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화합에 방점을 찍고 목회를 하자는 다짐이었다. 교회 이전도 당회에서 만장일치의 지지를 얻어 시작했다. 이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새로 지은 교육관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새 건물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이 늘면서 본당이 좁아졌다. 본당을 다시 짓기엔 전체 부지가 너무 좁았다. 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전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조선일보와의 협상은 어려운 가운데에도 순항한 편이었다. 그나마 대화가 진전됐던 건 양측의 필요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회가 이전할 장소였다. 서초구 예술의전당 앞을 비롯해 방배동도 가봤다. 삼성동과 잠실이 만나는 곳은 매우 유력한 부지로 떠올랐다. ‘리버사이드교회’라고 이름까지 잠정적으로 정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너무 시끄러웠다. 강북에선 평창동의 한 기도원이 관심을 끌었다. 이곳은 교통이 좋지 않아 무산됐다. 서울 구석구석에 땅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모든 곳을 답사했다.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보니 장로님들과 늘 동행했다. 모이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그럼에도 모두가 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며 솔선수범했다. 조선일보도 우리의 이전을 적극 지원했다. 지금보다 넓은 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데도 공감했다. 그러다가 성북동(현 성북로)에 살던 오춘희 권사님 가정에 심방을 가게 됐다. 오 권사님 부부는 성북동 고급 주택가를 개발한 분이었다. 누구보다 동네를 잘 알고 계셨다. 성북동 골짜기에 들어서는데 뭔가 느낌이 좋았다. 무엇보다 조용한 환경이 마음에 들었다. 숲속에 들어온 듯 했다. 한때 바랐던 전원교회의 모습이 그려졌다. 권사님께 대뜸 이렇게 말했다. “권사님께서 이 지역을 잘 아시니 혹시 2000평만 구해 주실 수 있으실는지요.” 알아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권사님은 곧바로 동네 복덕방 사장들을 집으로 초대해 땅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셨다. 이후엔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한 기업 회장이 살던 집이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마침 이 집은 다른 사람과 계약이 된 뒤였다. 권사님 부부가 찾아가 다른 땅을 주고 해약까지 해 확보하셨다. 이 집을 산 덕분에 덕수교회가 성북동으로 이전할 수 있게 됐다. 권사님 가정이 교회 이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정말 많은 고생을 하셨다.

부지를 완전히 매입하기 전 교인들의 의견을 물어야 했다. 1983년 11월 23일 공동의회를 열고 이전을 결의했다. 부지 매입은 이틀 뒤인 25일에 했다. 새 예배당을 건축하기에 앞서 당회는 정동 예배당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건축하자는 뜻을 모았다. 건축 중엔 경신고 강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교회는 85년 11월 10일 봉헌했다. 성북동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교회는 1984년 대한민국건축가협회 작품상도 수상했다. 조선일보와의 협상은 양측 모두가 좋은 결실을 맺어 상호 발전의 기회가 됐다. 지금도 서로 고맙게 생각한다. 교회는 성북동으로 이전한 뒤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름다운 교회에서의 사역은 풍성한 결실로 이어졌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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