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4 Dec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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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ib.co.kr - 8 days ago

취업이민 문 좁아지고 한국 고용지표 악화되자, 젊어지는 미국 투자이민


글 싣는 순서

이민자 혐오·추방 공포
최대 위기 맞은 이민사회
① 달라진 이민 준비 실태

강기섭(가명·54)씨는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의 한 이민대행업체를 찾았다. 그는 중견기업 임원으로 이달 말 퇴직을 앞두고 있다. 동년배들보다 조금 늦게 결혼한 탓에 두 딸은 아직 고등학생이다. 강씨는 “국내에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울 것 같고 진로를 고민하는 자녀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과감하게 이민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가 택한 루트는 ‘투자이민’이다. 자금 마련을 위해 지난해 작고한 어머니가 남겨 준 아파트까지 최근 처분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다음 달 매각한다. 은행예금과 퇴직금까지 모두 이민자금에 투입할 계획이다. 강씨는 “미국에서 취업비자를 받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지만 투자이민의 경우 투자금의 출처만 확인되면 비교적 쉽게 비자가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 투자이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反)이민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취업이민 등의 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어 빚어진 현상이다. 트럼프 행정부 이전에는 한국 이민자들이 주로 취업이민, 가족이민 등의 형태로 미국을 향해 떠났다. 이제는 투자이민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연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취업이민의 첫 단계인 노동허가서(LC) 승인을 받은 한국인은 4800명으로 지난해보다 573명(10.7%) 줄었다. 2016년 8349명에서 지난해 5373명으로 급감한 데 이어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케이토 연구소가 이민서비스국 통계를 분석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올해 미국의 H-1B 전문직 취업비자를 포함한 I-129 취업비자 신청의 기각률은 22.6%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6년(16.8%)보다 크게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인 고용 우선을 천명한 뒤 취업비자신청서 심사가 한층 까다로워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25년간 유지된 투자이민 최소 투자금액 기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투자이민 열풍을 부추기고 있다. 1993년 처음 도입된 미국 투자이민(EB-5)은 고용촉진지구(TEA)에 50만 달러, 그 외 지역에 100만 달러를 투자하고 2년간 10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하면 영주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나이, 학력, 영어점수 등을 보는 캐나다, 호주와 달리 투자로 인해 고용만 창출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배우자와 21세 이하의 자녀도 함께 영주권이 발급되는 장점이 있다.

미국 연방의회는 고용촉진지구에서 투자이민 최소 투자금액을 현행 50만 달러에서 92만5000달러(약 10억3500만원)로 올리는 신규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투자이민 최소 투자금액은 5년마다 미국 연방의회의 재승인을 거쳐 시행됐다. 그러나 투자금 현실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2015년 9월부터는 의회 승인 없이 수차례 임시 연장조치로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1일 서울지하철 삼성역 인근 호텔에서 열린 이민설명회에는 미국 투자이민을 준비하는 상담객이 줄을 이었다. 주최 측이 예상한 인원의 배에 이르는 300여명이 몰렸다. 올 하반기 서울과 수도권에서만 40여 차례 크고 작은 투자이민 박람회가 열린 것으로 추정된다. 투자이민 붐이 형성된 것이다.

미국 투자이민을 준비하는 연령대도 낮아지는 추세다. 미국 이민대행업체에 따르면 올해 미국 투자이민을 위해 회사를 찾은 40대는 전체 216명 중 48%로 전년 대비 9% 포인트 증가했다. 50대 이상 고령자는 10%로 전년보다 6% 포인트 감소했다.

취업도 창업도 힘든 한국의 경제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 이민을 결정하게 하는 요인이다. A이민대행업체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 부동산 가격이 올라 이득을 본 중산층이 미국 투자이민에 적극 참여하는 추세”라며 “국내 고용지표가 바닥을 치고, 창업 시장의 여건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미국 영주권을 선물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투자이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 취업비자를 취득하기가 까다로워지면서 영주권 취득 후 취직하려는 젊은층이 늘었다”며 “20대 투자이민 수요도 적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민박람회장에서 만난 서상혁(27·서울 강남구)씨는 “부모님께 미리 유산을 물려준다 생각하고 투자이민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어차피 경기가 좋지 않아 한국에서 취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기왕 힘들 거라면 미국에 가서 풍부한 경험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투자이민 과열 양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 투자이민의 경우 투자금을 회수하기까지 통상 7~8년 걸린다. 투자금을 송금하고 미국 이민국(USCIS)에 이민청원서(i-526)를 제출하면 승인까지 18~24개월이 걸리고, 조건부 영주권을 받는다. 이후 2년간 10명 이상의 고용창출이 이뤄지면 영구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 투자금은 조건부 영주권 발급 후 5년 뒤에 회수할 수 있다.

문종술 법무법인 MK 변호사는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투자금을 잃을 수 있고 2년간 고용창출이 이뤄지지 않으면 영주권을 취득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개인이 투자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전에 원금 회수 등 조건들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투자금을 유치하는 지역 센터(Regional Center)가 손실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만큼 정보를 무조건 믿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도 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후 투자이민이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으로 부상하며 현재 미국 이민국 웹사이트에는 900개 이상의 지역 센터 이민 투자 프로그램이 게재돼 있다. 문 변호사는 “해마다 지역 센터의 수가 급증하는 만큼 투자금 회수 및 성공적인 이민을 위해선 역량 있는 센터 선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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