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8 Januar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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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ib.co.kr - 7 days ago

문제 낑낑대는 학생, 학생 빨아들이는 학원, 오락가락하는 정부


교육부가 위치한 정부세종청사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겨울방학을 앞두고 이런 현수막 광고가 걸렸다. “예비 중1·2·3 선행반 大모집”이란 큰 글씨 아래 “12~2월, 1년 과정을 3개월 만에 훑기! 성적 역전의 시간을 잡아라!”라고 쓰여 있다. 방학을 이용해 초등학교 6학년은 중1, 중1은 중2, 중2는 중3 과정을 가르친다는 얘기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 금지법)은 학원의 선행학습 유발 광고를 금지한다. 교육부 보는 앞에서 대놓고 법을 위반한 것이다. 인터넷에는 선행학습을 유도하는 광고가 넘쳐난다. 학원가에선 박근혜정부 때 시행된 이 법이 사문화됐다고 여긴다. 사교육에 당한 또 하나의 ‘패배의 역사’다. 더욱 암울한 현실은 문재인정부는 사교육 대책이라고 부를 만한 정책조차 없다는 점이다.

로스쿨 입학 문제 푸는 고교생들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국어와 수학이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됐다.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하는 수험생을 변별하려면 당연한 수순이라는 사교육 업계의 예상은 적중했다. 특히 국어 지문이 복잡하고 난해해졌다. 긴 지문에 달린 문항마다 별도 지문이 주어지는 출제 방식이 다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지난 수능 국어 31번이다. 이런 문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과거에도 있었고 수능 100% 전형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 출제될 수밖에 없다.

국어 교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문제에 사교육은 재빠르게 해법을 내놨다. 로스쿨 입학 때 보는 법학적성시험(리트)이다. 이 시험의 언어이해 문제가 수능 국어의 이른바 ‘킬러 문항’과 흡사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킬러 문항을 푸느냐 마느냐에 따라 대학의 레벨이 달라진다는 ‘깨알 조언’도 덧붙인다. 이미 서울 강남 등지의 유명 학원에서는 리트 문제로 수능 킬러 문항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시켜주고 있다.

서울의 한 유명학원에선 리트 문항만을 추출해 만든 문제집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2019학년도 시험을 고려한 리트 문항이 추가됐습니다” “길고 복잡해진 지문 리트 기출문항으로 준비하자”라거나 수능 국어가 어려워진다는 기사를 캡처하고는 그 아래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뀜에 따라 국어 난도가 올라갈 것이란 내용의 기사예요. 자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리트 등 어려운 문제를 접하면서 수능 준비를 해야겠죠?”라고 광고하는 식이다. 고교생이 4, 5년을 뛰어넘어 로스쿨 입시 문제를 풀고 있는 건 정상이 아니다. 특히 이런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의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이 공정한 경쟁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



유치원에서 대입까지 사교육 세상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은 영어가 뇌관이다. 2017년부터 이어진 유치원 방과후 영어 수업 금지 정책이 학부모 저항에 부딪혀 오락가락하다 허용됐고, 현재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후 영어 수업으로 불이 옮겨 붙었다. 정부가 초등 1, 2학년 영어 방과후 수업 허용을 추진하자 영어유치원과 사립초등학교로 이어지는 트랙이 만들어지고 이로 인해 사교육비가 폭증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초등 1, 2학년 영어 방과후 수업을 허용하지 않으면 사교육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뚜렷한 철학도 없이 섣불리 건드린 결과 학부모 불안감만 증폭시키고 사교육만 배불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중·고교로 올라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중학생은 ‘특목고-자사고-일반고’로 서열화된 고교 체제 속에서 사교육으로 고통을 받는다. 고교로 진학하면 내신 사교육이 기본이다. 고교 1학년 첫 중간고사 한 번만 망쳐도 상위권을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에 선행학습은 필수라는 학원들의 ‘공포 마케팅’이 먹혀드는 구조다. 내신 사교육뿐 아니라 학생부종합전형에 대비하기 위한 각종 비교과 사교육이 기승을 부린다. 드라마 ‘SKY 캐슬’에 등장하는 입시 컨설턴트도 허구가 아니다. 종합 컨설팅이 아니더라도 소논문 프로젝트 하나 컨설팅하는 데 200만~300만원을 요구하는 업체도 존재한다.

정시 확대 기조와 맞물려 나타난 ‘불수능’은 재수 사교육 시장을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정시모집 원서 접수 결과 서울 상위권 대학들의 경쟁률이 일제히 하락했다. 서울대는 4.36대 1에서 3.58대 1, 고려대는 5.36대 1에서 4.39대 1, 연세대는 5.33대 1에서 5.01대 1, 성균관대는 5.72대 1에서 5.16대 1로 떨어졌다. 수능을 망친 상위권 학생들이 안정 지원을 하기보다 재수를 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학령인구 감소 때문에 고3 수험생이 2019학년도 56만6441명에서 올해 50만6207명으로 6만명 줄어들어 경쟁이 덜할 것이란 계산과 맞물린 결과란 해석이다.



따로 노는 교육과정과 대입, 사교육대책

문재인정부의 교육 정책 기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학부모 뜻대로’라고 할 수 있다. 교육 전문가나 교사보다는 학부모 뜻을 거스르지 말라는 것이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교육계를 달군 대입제고 개편 논의나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 영어 금지 논란 과정에서 확인됐다. 교육 수요자인 학부모 눈높이에 맞춘 것까지는 긍정적이다. 문제는 어떤 학부모인지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드라마 ‘SKY 캐슬’에 나오는 학부모들인지 아니면 중산층인지 아니면 저소득층인지 모호하다. 그러니 교육부 관료들은 먹고사느라 자녀 교육을 돌볼 겨를이 없는 학부모보다 사회적 발언권이 있는 힘 있는 학부모 눈치를 살피게 된다. 정책 타깃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여론 흐름에 따라 정책이 오락가락한다.

사교육 대책도 마찬가지다. 일단 교육부 업무분장을 보면 사교육 대책의 난맥상이 드러난다. 사교육 통계는 교육안전정보국 교육통계과가 맡는다. 학원 단속은 평생미래교육국 평생학습정책과다. 원래 4명으로 구성된 학원팀이 별도로 있었지만 지난해 없어지고 담당 인력도 2명으로 줄었다. 선행학습 금지법 총괄은 학교혁신정책국 학교혁신정책과가 담당하지만 초중등 영어 선행학습 규제는 교육과정정책국 교육과정과가 맡는다. 대학별고사 선행학습 규제는 교수학습평가과가 담당한다. 전반적인 대입제도는 대입정책과가 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부 직원은 “교육과정은 토론 중심, 과정 중심 평가를 강조하면서도 대입에선 수능을 다시 강화하는 등 국가교육과정과 대입 정책, 사교육 대책이 따로 노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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