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8 Januar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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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ib.co.kr - 7 days ago

[이명희의 인사이트]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일들


나이 들수록 말의 엄중함을 느낀다. 내가 남에게 상처 준 말은 기억하지 못하면서 상대가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는 비수가 되어 꽂힌다. 향긋한 말들은 귓가를 간질이며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일개 범인(凡人)도 이럴진대 하물며 한 나라를 통치하는 대통령이야 오죽할까.

이번 정부에서도 ‘소통’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민심을 얻기 전에는 간이든 쓸개든 다 빼줄 것처럼 달콤한 공약을 하지만 막상 권좌에 오르고 나면 그렇지 않은가 보다. 세상을 다 가진 듯 감언이설만 들으려 하고 고언에는 귀를 막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 심해지는 것일까.

1년8개월 전인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들을 때 우리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머지않아 올 줄 알았다. 잃어버린 보수정권 9년을 넘어 약자들이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고 청년들이 희망을 말하고 미래를 꿈꾸는 세상이 열릴 줄 알았다. 당선 직후 청와대 기자회견에서 국무총리를 포함한 주요 인사들을 직접 발표하고 참모들과 와이셔츠 차림으로 테이크아웃 커피 들고 청와대를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햄버거 가게에서 줄서 기다리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닮은, 소통할 줄 아는 대통령을 가졌다고 뿌듯해했다.

그러나 기대는 ‘역시나’로 돌아오고 있다. 취임 초반 감동적인 장면들이 알고 보니 뼛속까지 마초이즘으로 가득 찬 탁현민의 ‘쇼’라는 것을 알고는 문 대통령의 소탈함과 진정성까지 의심받는 지경이다. 취임 초 80%를 넘나들던 대통령 지지율은 2주째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는 ‘데드크로스’까지 곤두박질쳤다. 국정을 운영하는데 지지율에 일희일비할 일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전 연령층에서 20대 남자 지지율이 가장 낮았다는 점이다. 20대 젊은이들이 누군가.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 촛불혁명에 누구보다 앞장선 주역들이다. 지금의 20대는 민주주의 토양에서 자라나 물질적 부족함 없이 살아온 세대다. 병역복무기간도 줄여주고 청년들의 지갑을 두둑하게 해 주겠다고 최저임금도 2년 연속 급격하게 올렸는데 왜일까. 유시민의 말처럼 ‘축구도 봐야 하고 온라임게임도 하기 때문에 여자들보다 불리하다고 본’ 탓은 아닐 거다. 20대 청년층의 분노는 사라지는 일자리와 공정과 정의를 내건 도덕적인 정부에서 나타나는 불공정과 불의, 비도덕성 때문이다.

광화문에 있는 청와대 집무실에서 퇴근하는 길에 남대문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술잔을 기울이겠다고 하던 ‘광화문 대통령’ 공약은 빈말이 돼 버렸다. 허언을 밥 먹듯 하는 세상에서, 지난 보수정권의 두 대통령과 확연히 다르다고 느꼈던 대통령이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으니 실망감이 더 큰 것일 터.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나 지난 정부를 깎아내리기 위해 세수가 남아도는 데도 적자국채 발행을 기도했다는 것은 도덕성을 무기로 내세운 이 정부도 전 정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수에 그쳤다고 해서 문제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 무서운 것은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일들이다. 내부자폭로든 기밀유출이든 전 정권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 대응하는 태도는 어쩌면 그리 판박이인지 소름 끼칠 정도다. 우윤근 주러 대사의 비위 의혹과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한 김태우 수사관이 검찰 조사를 받는 모습은 2014년 박근혜정부의 ‘정윤회-십상시 문건’을 떠올리게 한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이래선 안 된다고 문제제기를 했던 기획재정부 전 사무관은 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극단적 기도까지 했다. 그가 제기한 민간기업 KT G 사장 교체 시도는 현 정부의 여러 낙하산 인사 시도 중 하나일 뿐이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도 아니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말 한마디 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면 누가 입이나 뻥긋할 수 있겠나.

대학교 때 야학교사를 하면서 어려운 아이들을 보고 불평등을 해소하고 싶어 공무원의 길을 택했다는 서른 두 살 사무관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부당하게 시장에 개입하는 데 이용하는 것을 보고 절망했다. 영혼 없는 공무원으로 그냥 살 수도 있었지만 침묵하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적폐라고 스스로 말할 만한 일을 이 정부가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집권 중반기에 접어든 문 대통령이 좀 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민초들의 바람을 뼈아프게 새겼으면 한다.

종교국 부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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