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2 November 2025
ohmynews - 5 days ago
내 몸이 허락하는 한 일하다 죽어 다랑이논에 흙이 되고 싶다
한때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로 불리던 다랭이마을. 그러나 오래 전부터 다랭이논은 잡초로 덮여가고 있었다. 680여개의 다랭이논 중 벼가 심긴 곳은 불과 7%. 농사를 짓는 주민은 손에 꼽고, 마을 인구의 70%가 65세 이상이다. 명승의 영광은 남았지만, 그 경관을 지탱하던 사람들의 삶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다랭이논이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남은 인생을 걸었다. 조정수 다랭이논보존회장. 그는 다랭이마을과 이웃 마을인 양지마을에서 지내다 2015년 홀로 다랭이마을로 이주했다. 버려진 논을 다시 일구고, 무너진 둑을 쌓으며 10년째 논을 살리고 마을을 지키는 일 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 8월 28일 다랭이논을 한창 가꾸고 있는 조정수 회장을 만나 사연을 들어봤다.
500년을 이어온 남해 터전을 떠날 수 없었다. 조정수 다랭이논보존회장은 40대 후반, 인생의 전환점에서 뜻있게 남은 인생을 쓰고 싶었다 며 다랭이마을로 이주한 그때를 회고했다. 2015년 11월, 조정수 회장은 남면 양지마을에서 다랭이마을로 터전을 옮겼다. 아내의 반대도 있었다. 양지마을에서 청년회장 등을 맡으며 지역의 주축 역할을 하던 남편이 다랭이마을로 이사하겠다는 선택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랭이논 복원 프로젝트
다랭이마을로 이사 온 후, 조정수 회장의 첫 번째 자체 과제는 버려진 논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조 회장은 마을에 콘텐츠가 부족하고 농사 짓는 사람이 없어서 힘을 보태야 했다 고 말했다. 그는 오자마자 집을 짓고, 없는 돈에 절반을 대출받아 1200평의 논을 샀다. 10년 동안 잡초가 무성하고 메말랐던 다랭이논들을 혼자서 개간했다. 둑도 쌓고 시간만 나면 복원 작업에 매달렸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꾸지 못한 논밭이 많다. 올해도 조 회장은 10개의 논을 살려서 모내기를 했다. 현재 남해군에서 보유한 논의 대부분을 다랭이논보존회가 위탁영농으로 관리하고 있기에 그에게 하루는 짧은 시간이다.
마을 정착 진심 봉사로부터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여는 일은 논 복원보다 더 어려웠다. 그래서 진심을 보이기 위해 봉사를 시작했다. 이사한 지 2~3년 동안에는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40개를 사비로 구입해 환경정화 봉사를 묵묵히 실천했다. 비 오는 날 손전등을 들고 다른 주민들의 눈에 안 띄게 쓰레기를 줍는 날도 많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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