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10 Decemb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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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 25 days ago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에서 내가 받은 것

1970년대 우리나라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이 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라고 불리는 백사마을이다. 도대체 어떤 곳일까, 2019년 10월 20일, 마을을 찾았다.

서울시 노원구 불암산 밑자락에 있는 이 작은 마을은, 1967년 도시 개발 정책으로 강제 이주된 철거민이 정착하면서 생겨났다. 당시 정부는 철거민에게 이주 대책으로 삼십 평 남짓한 천막을 주었다. 하나의 천막에는 네 가구가 모였고 그들은 분필로 선을 그어 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민들은 손수 돌을 쌓아 벽을 세웠고 집을 만들었다. 그렇게 백사마을을 일궈냈다.

입구에 들어서자 작고 낮은 집이 언덕을 따라 이어졌다. 발길이 끊긴 도로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판자로 만든 집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지붕 아래 선명한 거미줄을 보면서 그곳이 빈집임을 짐작했다. 집마다 쌓아 올린 연탄재는 마치 시간이 멈춘 마을 박물관 연상케 했다.

사람이 그리운 사람

언덕을 한참 올랐을까, 수레에 짐 한 보따리를 싣고 집으로 들어가는 할머니가 보였다. 무거운 짐 때문에 곤란해하는 모습이었다.

할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나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수레를 차지했다. 곧장 허리를 숙여 들어 올리는 순간 아뿔싸, 몸이 꼬꾸라지고 말았다. 수레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애써 태연한 척 자세를 다잡았다. 간신히 들어 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허리를 타고 퍼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할머니, 이거 진짜 무거운데요? 다 뭐예요?
다 시장에서 팔 것들이여. 요건 된장, 요건 마늘. 방금 산에서 따온 열무도 있어.

그는 수레에 실린 물건을 하나씩 꺼내며 설명했다. 언뜻 볼 때는 몰랐는데 꽤 많은 물건이 실려 있었다.

아휴 고마워서 우째, 커피 한 잔 마시고 가, 내 금방 타줄게.

일을 마치고 돌아서는 나를 할머니가 붙잡았다. 그렇게 김옥분(80세) 할머니에게 정식으로 초대받았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초대 받았다. 기분이 묘했다. 민폐가 아닐까 장판 위를 조심스럽게 디뎠다. 할머니는 어색해하는 나를 보며 깔깔 웃었다. 덕분에 한결 편해졌다.

거실에 들어서니 방 안 가득 풀냄새가 진동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포대자루가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산에서 캐온 나물과 약초였다. 할머니는 25년째 백사마을 주민이다. 6년 전, 할아버지와 사별하고부터는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을 직접 구해온다고 했다. 주전자에서 물이 끓었다. 그가 커피를 건네며 말을 이어갔다.

총각 보니께 아들 생각나네. 우리 아들이 일본에 살어. 거서 결혼하고 아도 낳았어.
그러면 할머니 혼자 지내세요?
그렇재, 할아버지 죽고 나 혼자 살지. 여 동네 노인들이 다 혼자 살어. 독거노인이야.
아드님 보고 싶으시겠어요.
보고 싶지. 나는 아들만 보고 사니께. 근데 자식까지 네 명이면 비행깃값이 얼마여. 그래서 아버지 제삿날에 한 번, 내 생일에 한 번, 일 년에 두 번 봐.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게 익숙하다며 태연하게 말했지만 표정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혼자 살면 무섭지 않으세요?
무섭지. 근데 우째 그냥 사는 거지. 여가 또 저녁에는 캄캄해서 더 무서워. 긍까 어디 가서 혼자 산다 안 혀. 오늘같이 우중충한 날에는 뱀도 나와. 그래서 산에서 금방 내려왔잖어.

커피를 담은 종이컵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그는 쉬지 않고 말했다.

모르는 총각 만나서 말도 많이 했네, 고마워.
할머니, 건강하세요!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섰다. 대문턱을 넘을 때까지 나를 보는 할머니 시선이 느껴졌다. 가슴이 뭉클했다. 할머니는 가족만큼이나 사람을 그리워한 것 같았다.

골목골목 이어진 길을 걷다 보면 이곳을 뛰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언덕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봤다. 타이어가 올라간 지붕이 얼기설기 모여 있었다. 한때 3500명이 거주할 만큼 번화한 마을이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또 한참을 걸었을까, 한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할머니가 포대자루를 옮기고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가 바닥에 쓸리고 있는 끄트머리를 잡아 올렸다. 할머니가 흠칫 놀랐지만 이내 우리는 호흡을 맞춰 쓰레기장까지 올라갔다.

나비야~

이름 부르는 소리에 고양이가 스멀스멀 모였다. 길고양이치고는 토실토실한 게 건강해 보였다. 이렇게 많은 고양이를 어떻게 키우세요? 라고 묻자, 그는 자신은 밥만 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원래는 한 마리였는데 어쩌다 보니 다섯 마리가 됐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권애자(72세) 할머니는 15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 그는 이제 사람보다 동물이 많을 거라며 씁쓸한 농담을 던졌다.

예전에는 여기도 사람이 바글바글했어. 애들도 뛰어놀고 밤에도 시끌시끌했지. 이제는 다 떠나고 우리 같은 노인밖에 안 남았어.


지난 5월, 백사마을은 재개발 구역으로 최종 확정됐다. 지지부진하던 사업이 10년 만에 본격화에 들어선 것이다. 소식을 접한 대부분 주민이 마을을 떠났다.

백사마을 재개발 사업은 국내 최초로 아파트 건립과 기존의 저층주거지 일부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에서는 백사마을의 각종 생활문화 유산을 수집하기로 했다. 백사마을이 지켜온 역사를 보존하겠다는 취지다.

집으로 가는 길, 터덜터덜 언덕을 내려갔다. 우리가 보존해야 하는 건 비단 백사마을이 지켜온 공간만은 아닐 테다. 사람은 떠나고 없지만, 여전히 마을을 지키는 원주민의 정 또한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 아닐까, 끈끈한 정으로 뭉친 공동체란 무엇일까, 내게는 낯설기만 하다.

오늘도 한 집이 떠났다. 내일은 얼마나 떠날지 모른다. 결국 나도 떠나야 한다. 케케묵은 백사마을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 찬란한 이야기 속에 작은 염원을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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