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에서 10월의 가을 방학을 맞아 가족끼리 스코틀랜드 동북쪽을 여행했다. 조그만 어촌 마을 Hiton 이라는 곳에 숙소를 잡고 주변을 슬슬 산책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내 입이 떡 하니 벌어졌다. 이럴 수가. 남편이 얼음처럼 멈춰버린 나를 붙잡고 왜 그러냐 며 걱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 내 눈에 쏙 들어온 건 한글이었다. 믿음. 소망. 사랑
다름 아닌 존 로스 (John Ross) 방문센터. 나는 평소 존 로스를 존경한다. 존 로스가 한국 기독교에 깊은 뿌리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한국어 역사에도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를 찾기 위해 중국에 있을 때 선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존 로스가 처음으로 개척했던 동관교회를 방문했을 때가 2009년 겨울이었다. 선양에서 택시를 타고 아저씨한테 동관교회를 가자고 했던 날, 택시 앞 창문으로 하얀 눈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평일이었기에 교회 문이 열렸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본관이 열려있었다. 한 때는 3만 명이나 모였다는 교회. 높이 우러러봐야 할 만큼 천장이 높고 넓은 교회당이었다.
본관에 이어 옆에 있던 조그만 별관(문광 서원)에 들어섰다. 1876년부터 시작된 교회 목사님의 얼굴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중에 반가운 얼굴이 제일 처음에 있었으니 바로 존 로스였다. 존 로스는 스코틀랜드 태생이다. 1872년 그가 몸담고 있던 스코틀랜드성서공회(National Bible Society of Scotland)에서 파송된 곳이 중국 만주였다. 스코틀랜드 게일어가 모국어였던 그는 영어뿐아니라 중국어로 설교를 할 만큼 중국어에 능통했다. 거기다 1866년 조선에 발을 디뎠던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의 영향으로 조선인에 관심이 컸다.
당시 중국 만주(서간도 지방)에 조선인 집단촌이 있었고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을 만나면서 함께 성경을 번역한다. 그들이 머리를 맞대며 번역했던 곳을 문광서원이라고 부른다. 드디어 존 로스는 1882년 lt;예수셩교젼셔 누가복음젼셔 gt;를 발간한다.
존 로스가 최초로 한글 성경을 번역했다는 것 말고도 또 다른 업적은 한글 띄어쓰기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그가 만든 한국어 교재 조선어 첫걸음 (Corean Primer, 1877) 은 자기처럼 외국인에게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만든 책으로, 한글 문장을 영어식으로 띄어 쓰고 한글 아래 영어로 발음을 표기했다. 그 이후 1896년 최초의 한글판 신문인 독립신문 이 발간되면서 한글 띄어쓰기가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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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1 November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