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긴 폭염이 지나기를 고대했다. 더위가 한풀 꺾이던 날, 빙그레 웃음이 나온 것은 계절을 어길 수 없는 자연의 순리가 대단해서다. 아, 기어이 가을이 오려나 보다. 노란 단풍이 너울거리고 빨간 고추잠자리가 허공을 맴돌던 가을인가 했다. 고대하던 가을이 오려는데 반은 반갑고, 반은 언짢았다. 올해도 다 갔다는 생각에서다. 친구는 코스모스가 싫다 했다. 한 해의 마감을 알려주는 꽃이라서란다.
가을이 왔으니 추억을 주는 넉넉한 가을인가 하는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하늘이 어둡다. 검은 구름이 가득하다. 어찌 이렇게도 아름다운 가을 날을 비가 채우고 있단 말인가? 시골에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가을 비다. 벼가 영글고 밭 곡식이 익어야 한다. 가을 날의 성스런 타작을 해야 한다. 벼가 익고 따가운 햇살 아래 습기가 말라야 가능한 일이다. 황금색이 출렁이던 논바닥엔 익어가던 벼가 누웠다. 가을 비와 함께 찾아온 바람의 심술이다. 찰 지게 영글어야 할 벼가 누워 있으니 일년을 공들인 농부들의 가슴에 멍이 들고 말았다.
기나긴 가을비가 걱정되어 친구한테 전화를 했다. 시골에서 오이 농사를 짓는 친구다. 고향을 찾으면 오이도 주고 고향 소식도 전해주는 오래 전의 친구다. 친구가 한숨을 짓는다. 햇살이 없어 오이가 자라지 않는단다. 자란 오이도 모양이 제각각이란다. 오이가 구부러지면서 생김이 어색하고, 맛도 없단다.
김장 배추가 기다리는 맑은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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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17 October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