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15 October 2025
ohmynews - 3 days ago
송건호와 안해균의 지식인 논쟁
1960년대는 변형된 무인시대 였다. 명색이 민주공화국이지만 실제는 전역한 군인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일부 민간인들이 권력 주변에 배치되기는 했으나 주요 포스트에는 퇴역 군인들이 차지하였다. 이승만 시대에 만송족 이 설쳤듯이 제3공화국에서는 박통족 이 지배하였다.
지식인들은 고려 무인시대처럼 어용화 또는 관제화되어 비판기능을 상실하였다. 4.19혁명과 함께 깨어난 듯 했으나 5.16쿠데타와 이어진 군정, 계속되는 폭압통치로 지식인들은 숨을 죽이고 권력 쪽으로 변신하여 곡필을 휘두르는 자가 적지 않았다. 월간 lt;사상계 gt;가 정론을 펴고자 애썼지만 권력의 집중포화로 점차 힘을 잃었다.
이런 속에서 소수의 지식인들이 본분을 잃지 않고 정도를 찾았다. 언론인 송건호도 그중의 일원이다. 송건호는 한국지식인론 - 사회과학도로서 한 반성 을 lt;정경연구 gt; 1967년 9월호에 기고하여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에 대해 안해균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가 같은 잡지 10월호에 한국지식인론을 박한다 - 송건호씨의 한국교수·지식인관은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를 기고하고, 이어서 송건호가 같은 책 11월호에 한국지식인 재론 - 어느 독자의 물음에 답한다 의 반론을 썼다.
송건호는 한국 지식인론 에서 지식인의 풍토와 상황, 지식인과 지성, 지식인과 현실참여 등의 문제를 광범위하게 거론하면서 사회과학도의 한 반성 으로서 대학의 현실과 대학교수 특히 사회과학자들의 학문자세 등을 비판하고 결론으로 지성을 저버리지 않는 정치 , 교수들의 학문을 통한 현실참여 를 주장하였다.
송건호의 논문 한 부분이다.
사르트르는 학자와 지식인을 구분하여 학자는 연구를 생명으로 삼으나 지식인은 비판을 생명으로 삼는다고 말하여 단순히 연구만 하는 학자는 지식인일 수 없다는 독특한 주장을 한 바 있다. 따라서 현실참여를 하는 것은 지식인뿐이며 만약 학자가 현실참여를 한다면 그는 이미 학자가 아닌 지식인이라는 주목할 만한 말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사르트르가 말하는 지식인이란 본래 지성인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며 연구만 하는 자가 학자라면 많이 알고 있는 자는 지식인이라 해야 하겠고, 단지 알고만 있지 않고 그 지식이 하나의 전체적 사회인식(과학)으로서 현실을 비판하고 민족에 방향을 제시하는 무기가 될 때 그는 단지 지식인이 아닌 지성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인의 현실 참여란 단순히 정치현실에 관여한다는 좁은 의미가 아니고 역사에 참여하는 보다 고차원의 참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사회과학적 인식은 단지 역사적이며 전체적 인식만이 전부가 아니다. 사회과학적 인식은 또한 경험적 인식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사회과학이 특히 학문의 경험성 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는 학문이 가지는 고도의 관념성 윤리성 사변성의 정체적인 제 전통을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최근 한국적 인 것을 탐구하는 일부 학자들이 주체성을 강조하려는 나머지 한국에도 자체 내에 근대화될 수 있는 정신적 전통이 있다고 하여 가령 실학파를 소개하고 자랑도 하나 그 의도가 가하고 그 주장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이 땅의 정통적 학계와의 일파 성리학자들에 의해 거의 점령되어 있다시피 한 사실을 부인치는 못할 것이며, 때문에 오늘날까지 아직도 이 땅의 학계가 경험적 실증적이라기보다 사변적 윤리적 추상적인 경향이 짙다는 사실을 인정치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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