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그 유명한 7세 고시를 해봤다. 대치동 어떤 학원에서는 7세가 거미의 일생을 영작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한국말로도 할 말이 없는데 7살 아이들이 그걸 어떻게 해낼까 싶다. 우리의 7세 고시는 대치동과 결이 좀 다르다.
동생들이 놀다간 장난감이 우리집 거실을 점령하고 있었다. 아이는 할머니,제가 정리할게요 하더니 작은 손으로 척척 제자리를 찾아준다. 수건이랑 옷가지까지 깔끔하게 정리됐다. 큰손녀의 위엄이었다. 영어로 거미의 일생을 쓴다는 그 7살은 동생의 장난감을 이렇게 정리해줄 수 있을까. 7살은 이런 걸 먼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연휴 일주일간 아이는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다. 아들며느리는 아이만 남겨놓고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할머니,공부하자요 하면서 폼을 잡는다. 나도 거기에 장단을 맞춰줬다. 학습, 놀이, 정리, 식사, 잠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루틴이 시작되었다.
며느리가 손녀의 송편빚기 숙제를 남편에게 말했나 보다. 손녀라면 그저 좋은 남편이 내게 한마디도 없이 방앗간까지 가서 쌀가루와 참깨속을 사왔다. 보자마자 나는 못한다 하고 딱 선을 그었다. 모든 할머니는 송편 빚을 줄 안다는 선입견이 있나 보다. 덕분에 추석이 끝난 지금까지 쌀가루와 참깨속은 우리집 냉장고에 그대로 있다. 저걸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송편은 포기하고 역할극을 했다. 손녀가 선생님이고 나와 남편이 학생이 됐다. 아이는 선생님답게 남편을 OO야~ 하고 불렀다. 역할극이니 당연하지만 손녀에게 이름을 불릴 줄은 몰랐던 할아버지는 허허거리며 동영상 찍을 준비를 했다. 아이 선생님은 수업에 집중하라면서 폰을 하지 말라고 했다. 남편은 말 잘 듣는 학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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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15 Octo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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