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되었다. 작은 스타트업 기업에서 평범하게 사무일을 하면서 정해진 월급을 받으며 본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특별할 건 없었지만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꿈꾸던 삶, 좋아하던 것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걸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시작은 홈쇼핑 기획 일을 하면서였다. 상세페이지와 리플렛 등 회사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디자인적 고민이 점점 나의 고민이 되었다. 이거 배우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였던 고민이 하고 싶다 로 바뀌었다. 그것이 동기부여가 되어서 결국 퇴사를 했고,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모험과 도전의 첫 발을 내디뎠다.
회사에서 제공해 준 집에서 나와 스스로 살 집을 찾아나섰다. 모아 놓은 돈은 학원 다니며 생활비로 사정 없이 흘러내렸다. 비전공자가 전공자들 사이에서 공부를 하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현실이었다. 그들과 나는 시작이 달랐다. 1년이 넘자 돈은 바닥이 났다. 집 근처 저녁 시간대에만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고깃집 설거지 아르바이트.
고기집이 힘들다곤 들었지만 당장 돈을 벌어야 했기에 선택권이 없었다. 고민할 여지도 없었다. 면접을 보자마자 다음 날부터 출근이었다. 첫 날 당연히 매장 소개, 인수인계, 통성명 정도는 해줄 거라 생각했다. 회사 생활을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런 절차가 기본이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주방에 들어섰을 때, 내 손에는 고무장갑이 쥐어졌다. 곧바로 닥치는 대로 그릇을 닦아야 했다. 그 곳에서 난 설거지 알바 로 불렸다. 10kg 락스통과 세제통을 들어 올려 싱크대에 계속해서 부어댔다. 몇 년 전부터 허리디스크가 있었던 나는 무거운 것을 드는 게 버거워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방 이모에게 돌아온 대답은 무거운 것도 들다 보면 힘이 세지는 거다 였다. 무거운 것을 드는 건 내 몫이었다.
처음 합의한 아르바이트 시간은 6시~11까지였다. 첫 날은 사장님께서 오늘은 마감까지 하고 가요~ 라고 했다.
본인이 퇴근 했을 때 이모가 남아서 뭘 하는지 알고 있어야 더 많은 걸 해주고 갈 수 있으니까 기억하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라고 하셨다. 불편했지만 첫 날이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후로 12시가 넘어야만 퇴근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난 후 사장님께 물었다.
저 퇴근 시간이 몇 시예요?
돈 더 벌어야 하잖아요. 12시까지 해요.
또 불편했지만 맞는 말 같았다. 돈이 필요했으니까.
아르바이트 3일 차에 반찬 세팅을 하라고 하셨다. 반찬 세팅을 잘하니까 홀에 나가서 상을 치우라고 했다. 들어오시는 손님들 상도 세팅해주라고 하셨다. 그것도 잘하니까 재료손질을 하라고 했다. 파를 다듬고, 마늘을 까고, 양파를 까고 두부를 썰었다. 밥이 떨어지면 밥도 안쳤다. 홀로 많은 양의 설거지를 하면서 다른 일까지 돕는 게 버거웠다. 6시간 일했는데 쉬는 시간은 단 5분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장님과 사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 만큼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어서 힘들다고 했다.
주방 이모가 설거지 안 도줘서 힘들지, 네가 지금보다 더 도와주면 도와주실 거야.
그 후로 냉면, 비빔냉면을 올리고 된장찌개와 계란찜과 도시락 전반적인 주방 일까지 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고기를 써는 사장님의 업무 빼고 다 한 것이었다. 나 자신을 갈아 부어서 일 하고 있는 것도 몰랐다. 오랜만에 하는 아르바이트였고, 돈을 벌어야 했기에 참았다.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급급해 존중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게 당연한 거라고 배우지 않았지만 사회가 마치 현실은 그렇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생 아르바이트의 하소연을 듣게 되었다. 자긴 원래 퇴근 시간이 10시었지만 거의 새벽 1시나 2시에 퇴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게 당연한 게 되었다고 했다. 사장님은 자기를 알바 라고 부르신다 했다. 고기집에서 된장찌개를 옮기다가 손을 데인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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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29 Octo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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