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18 Octo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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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 10 hours ago

우리 이제 각방 쓰자 ... 결혼 30년간 못 한 말이었으나

우리 이제 떨어져 지내. 각방 쓰자.

며칠 전부터 이 한마디가 목구멍에 걸려서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결혼생활 30년 동안 우리 사이엔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나온 적이 없는 말. 입 밖으로 내뱉어서는 안 될 금기어 각방 이 목구멍 끝에서 스프링처럼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요즘은 개인 프라이버시가 집값만큼이나 높아진 시대다. 신혼 살림을 준비하는 부부는 안방을 어떻게 꾸밀까 가 아니라 누가 쓸까 를 상의한다고 한다. TV 관찰 예능 속 연예인들도 각방을 공개하는 게 자연스러운 트렌드가 되었다.

서로의 체온이 다르고, 잠버릇이 다르고, 수면의 질을 위해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는 지금의 문화 속에서 부부가 싸워도 한방을 써야 한다 는 고정관념은 이미 올드한 멘트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나에게 각방 은 부부의 마지노선이자, 패배의 흰 깃발이었다. 결혼은 일심동체이며, 하나의 지푸라기에 엮인 굴비처럼 함께 묶인 운명 공동체라 여겼다. 오징어 게임을 하듯 죽어도 살아도 함께하는 2인 3각 경기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X세대의 내가 MZ세대의 유행에 합류하겠다는 건 더더욱 아니다.

PD와 작가가 만나서 한방 쓰는 부부가 되었다


책상에 마주 앉아 함께 아이템 회의를 하고, 나란히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취재를 다녔다. 세상은 잠들었지만 여전히 대낮인 편집실, 하나뿐인 소파 위에서 N극과 S극처럼 새우 동침을 하다가 결국은 한방, 한 침대를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같은 직업, 같은 직장, 같은 나이. 동료로 만나 친구가 되고, 부부가 된 우리는 사랑과 의리로 뭉친 연합군이었다.

아직도 한 침대에서 자?

둘뿐이던 우리 부대에 하나 둘 대원이 늘어났다. 까까머리 대원들이 계급이 오르는 사이, 친구들 사이에도 하나둘 각방 커플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친구는 자랑스럽게 안방 쟁탈 성공기 를 들려주었고, 또 다른 친구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오랜 각방 생활을 고백했다.

아직도 한 직장, 한 방, 한 침대를 쓴다는 우리 부부를 친구들은 천연기념물 이라며 경주 유적지에 보존해야 한다고 놀렸지만, 그들의 놀림은 내게 오히려 자부심 이었다. 방 하나, 침대 하나가 우리 결혼생활의 건재함을 증명해 주는 표식이라 믿었으니까.

일심동체의 자부심은 어느새 동상이몽이

지금 사는 집은 방이 네 개다. 열심히 일하고, 덜 입고 덜 먹으며 늘린 건 작고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도, 명품 가방도 아닌 방 한 개 였다. 우리의 자부심인 안방, 아이들 이름으로 하나씩 배분되고 남은 한 칸을 공동 작업실로 꾸몄다. 책상과 노트북, 의자를 나란히 두고 남편은 편집을, 나는 원고를 썼다. 나란히 커피를 마시고, 하나의 모니터로 영화를 봤다.

그러던 어느날부터인가, 우리의 방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퇴사 이후 나는 작업실에 들어갈 일이 줄었다. 노트북 대신 주방에 더 자주 서 있었고, 소파나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남편의 키보드 소리가 방해된다는, 사소하지만 분명한 이유에서였다.

남편은 작업실이, 나는 거실과 침실이 생활 동선이 되었다. 드라마의 단골 장면처럼, 자다가 깬 새벽마다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몇 시인지도 모르는 새벽, 작업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약 올리듯 혀를 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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