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30 Octo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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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 3 days ago

일제강점기 경찰 출신의 국회의원 당선, 그 역사적 아이러니

리어카와 소구루마에 확성기를 매단 유세차량은 초라하기만 했다.

시민 여러분, 우리 아버지 국회에 보내 주세요!

아버지의 국회 입성을 호소한 이는 박기운의 딸이었다. 박기운은 제헌국회의원선거에서 청주에서 출마한 이였다. 다소 청승맞고 처량한 목소리였지만, 그 호소는 시민들의 감정을 흔들었다.

박기운 후보는 청주 곳곳을 다니며 시민들에게 허리를 굽혔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경찰과 공무원들의 뻣뻣한 모습만 보았던 시민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들에게 허리를 굽힌 높은 분 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백정도 인간 대접 받아야


다른 후보들이 본정통(현재의 성안길)에서만 선거운동을 했다면, 박기운은 청주 골목골목을 다녔다. 당시 청주는 지금처럼 넓은 도시가 아니었다. 남쪽으로는 모충동, 북쪽으로는 내덕동까지가 시의 경계였다.

그러나 모충동 일대는 사방이 허허벌판이었고, 실제로는 육거리 일대에 상가와 주거지가 밀집해 있었다. 서쪽 끝은 사직동이었으며, 현재의 사창동과 개신동은 당시만 해도 청원군 사주면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청주 곳곳을 다닌다 해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박기운을 제외한 다른 후보들은 골목 유세를 하지 않았다.

청주 합동연설회는 중앙공원에서 열렸다. 첫 번째 연설이 막 시작될 때였다. 박기운 후보 법정대리인 최동찬(1925년생)은 박기운에게 귓속말을 했다. 후보님, 백정 얘기를 들먹이세요. 눈을 반짝이던 박기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의 정견발표가 시작되었다.

남주동 피전 거리에는 사람 취급받지 못하는 이들로 넘쳐납니다. 고기 장사하는 백정이 그들입니다. 그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제사상에 소고깃국을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인간 대접을 받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박수 소리에 각 후보가 동원한 시민들도 놀랐지만 단상에 있는 후보들이 가장 크게 놀랐다. 그 말을 한 박기운조차도 놀랐으니 할 말 다한 것이다(국사편찬위원회, 1940~50년대 청주지역 정치사회상 , 2009).

시민밀착형 선거운동으로 박기운은 청주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투표함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시민들은 대부분 청주부윤 출신의 민영복이 당선될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박기운이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사실 박기운의 이력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박기운(1912년생)은 충주 성서동 출신으로 1928년에 충주공립보통학교(현재의 교현초등학교)를 나왔다. 일제강점기에 경찰에 입문한 그는 1935년 7월 12일 청주 북이파출소에 발령을 받았다. 일제강점기에 근화(槿花) 비밀결사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했다고 한다(김사달, lt;충북인사론 gt;, 1955. lt;매일신보 gt; 1935.7.15).

하지만 그의 독립운동 이력은 명확하지가 않다. 근화 비밀결사라는 조직의 출처가 불분명하며 충주에서의 독립운동 자료에 그의 이름이 거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충주지역사회연구소 전홍식 소장은 위의 사실을 근거로 박기운의 독립운동 경력은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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