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과 신덕왕후 강씨는 조선 왕조 개국의 주역이었다. 계모와 새아들의 관계였던 두 사람은, 혼란했던 여말선초 시대에 결국 태조 이성계를 왕위에 올리고 조선을 만드는데 함께 기여했던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권력을 향한 끝없는 욕망은, 두 사람을 믿고 의지하던 모자 관계에서 철천지원수라는 악연으로 바꾸어놓게 된다.
28일 방송된 tvN 스토리 lt; 벌거벗은 한국사2 gt;에서는 왕실잔혹사, 아들 이방원 vs. 어머니 신덕왕후 편이 그려졌다.
신덕왕후는 고려의 권문세족 가문인 신천 강씨 출신이다. 훗날 남편이 되는 이성계는 당시만 해도 수도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함경도 변방의 장수에 불과했지만, 수많은 전투에서 전공을 세우며 고려말 최고의 명장으로 부상했다.
고려의 중혼
고려는 공식적으로 1부 1처제였지만, 말기에 접어들며 사회 혼란과 지배층의 문란으로 인해서 중혼 문제가 종종 발생했다. 이성계처럼 지방 출신의 인물들이 고향에서 이미 결혼을 하고도 개경의 중앙귀족 가문과 관계를 맺기 위하여 다시 결혼을 하는 폐단이 나타났다. 고향에서 결혼한 아내를 향처(鄕妻), 수도 개경에서 결혼한 아내는 경처(京妻)라고 불렸고, 둘 다 동등한 정처로 대우받았다. 신덕왕후가 바로 이런 경처에 해당했다.
이성계는 이미 향처인 신의왕후 한씨가 있었고 여섯 아들까지 둔 상태였다. 이성계의 5남 이방원도 신의왕후의 소생이었다. 이성계는 신덕왕후와의 혼인관계를 롱하여 아직 입지가 미약했던 중앙정계에서 처가인 강씨 집안의 든든한 후원을 받게 됐다.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나이 차는 무려 21살이었다. 아들이 된 이방원의 나이 차는 약 11살에 불과했다. 이성계는 총명했던 아들 이방원을 개경으로 불러와 공부를 시키기로 했고, 신덕왕후는 친자식도 아닌 향처의 아들을 맡아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의외로 신덕왕후와 이방원의 초창기 관계는 매우 돈독했다. lt;태조실록 gt;에 따르면 신덕왕후는 이방원을 보고 어찌 내가 낳은 아들이 되지않았는가? 라고 할 만큼 마음에 들어 했고, 이방원 역시 신덕왕후를 친어머니처럼 믿고 따랐다고 한다.
이방원은 신덕왕후의 후원을 등에 업고 공부에 매진하며 당당히 과거에 급제하고 이후 정계에 진출하면서 아버지의 든든한 오른팔이 된다. 또한 신덕왕후는 이성계와의 사이에서 딸 경순공주와 아들 이방번, 이방석을 낳았다. 내조뿐만 아니라 정치적 감각도 매우 뛰어났던 신덕왕후는 이성계가 중앙 정계에서 정적들의 견제를 받을 때마다 권문세족인 자신의 집안을 활용하여 여러 차례 남편을 지원하고 위기에서 구해냈다.
이성계의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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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30 Octo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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