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는 글 쓸 줄 몰라요.
수업 초반, 어르신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하시는 말씀이다. 젊을 때 일기 써본 적이 있다, 정도가 글쓰기 경험의 최대치다. 몇 번 겪어보니 글을 모른다 는 건 글을 못 쓰는 게 아니라, 아직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는 뜻이란 걸 알게 됐다.
지난 수업시간, 한 어르신이 들어오시며 도배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아무것도 못 쓰겠어요. 하셨다. 평소에는 잘 쓰시던 분이었다. 이 한 마디에서 나는 이미 몇 편의 글을 보지만 끌어내기 위한 단계가 있다. 한 문장에 들어있는 여러 계절을 차분히 꺼내는 일이다.
왜 도배를 하셨냐는 내 질문 하나에 이야기가 열렸다. 위층에서 물이 새어 천장부터 벽까지 얼룩이 생겼다. 그게 벌써 몇 년째인데 어차피 어르신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그러려니 하고 사셨다고.
그런데 왜 이번주는 그러려니가 안 됐어요?
외국 사는 딸래미가 온다하니 벽지가 밟히잖아요.
그 말에는 설렘과 미안함이 함께 묻어 있었다.
고맥락 언어를 수업에 이용하는 법
한국어는 고맥락 언어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가 밥은 먹고 다니니? 라고 물었다고 하자. 영어라면 Are you eating well? 이나 Have you been eating? 으로 직역되지만, 이 질문의 진짜 의미는 잘 지내니? 건강하니? 힘든 일은 없니? 다.
한국어는 문장 그대로보다 맥락과 관계, 상황으로 의미를 전달한다. 밥 먹었어? 는 인사이고, 우리 밥 한번 먹자 는 만남의 제안이며, 밥값은 한다 는 능력의 인정이다.
영어가 명시적으로 말해야 한다면, 한국어는 행간을 읽어야 한다. 침묵의 문법이다. 말줄임표 사이의 진심을 읽어야 하는, 어찌보면 피곤한 언어이긴 하다. 같은 단어도 누가, 언제, 어떤 관계에서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 이것이 고맥락 언어의 특징이다. 이런 특성을 시니어 글쓰기 수업에서 이용하려면 질문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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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12 October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