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33년이 지나고서야 남편과 함께 제주에 갔다. 아이들이 결혼기념일이라고 미리 항공권을 예매하고 서두른 덕분이다.
자영업 18년차이다 보니 그동안 편하게 시간을 내지 못했다. 결혼기념일이 있는 10월은 평범한 직장인들한테는 황금 연휴가 있는 달이지만 동네 도시락 가게를 하는 우리에겐 매년 불안한 휴일이었다. 자리를 잡지 못했던 자영업 초반엔 휴일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특히 올해는 연초부터 열흘 연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왠지 좀 씁쓸했다. 내가 제주에 있으리란 생각은 조금도 못했다.
고맙게도 두 아이들이 이제 제 밥벌이를 하니 반강제로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통보했다. 못 이기는척하며 남편과 단둘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동안은 아이들 스케줄에 우리 몸을 맞추는 삶만 살았는데 왠지 어색한 며칠을 둘이서만 살았다.
남편도 나도 부대끼는 삶을 사느라 자유롭게 여행하는 법이 몸에 배지 않아 뭐든 어색하고 껄끄러웠다. 여행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것도 뭐부터 해야할지 몰라 멍하게 있는 걸 보니 웃음이 나왔다.
갈아입을 몇 가지와 약을 먼저 챙겼다. 제주에 살고 있는 조카 내외가 있어 덕을 좀 보았다. 20년만에 제주에 간다니 숙소와 차를 준비해 주었다. 여행 일정도 현지에 있는 두 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그렇게 도착한 제주 숙소에 짐을 풀고 제주 음식부터 먹어보기로 했다. 제주 은갈치 정식이란다. 무 너덧 개 위에 갈치 몇 점을 올려 조림으로 나왔는데, 또 직업병이 발발해서 이 정도면 원가는 얼마쯤 되겠다 마늘을 좀 더 넣고 청양고추를 넣었다면 더 맛있었겠다 는 등 쓸데없는 생각들이 올라왔다.
아이들이 뭐든 맛있게 먹으라고 용돈도 따로 챙겨 주었건만 어쩌면 좋단 말인가? 네 사람 점심값으로 10만 원 가까이하는 돈을 계산하려니 아랫배가 아픈(?)느낌이었다. 도시락을 수십 개를 팔아야 남는 돈이다.
제일 먼저 제주의 푸른 바다를 보고 싶어 산방산 근처로 차를 몰았다. 열대 식물 가로수부터 제주 느낌이 물씬 풍겼다. 짙푸른 하늘과 깨끗한 흰구름이 도시의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청량했다. 가슴 속까지 시원했다. 제주의 바다색은 또 얼마나 짙고 깊은 푸른 빛인지 하얀 윤슬이 보석처럼 눈부셨다. 지금까지 나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일상의 분주함과 복잡함이 한순간에 포맷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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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13 October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