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최고 영예라고까지 불리는 칸영화제 올해 황금종려상은 이란 출신 감독 자파르 파나히의 lt;그저 사고였을 뿐 gt; 차지가 됐다. 이달 개봉해 한국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이 영화는 한국에선 만나기 쉽지 않은 이란 출신 감독의 작품이란 점에서 또한 유효한 지점을 점하고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아스가르 파라디, 마지드 마지디 등 한국에서도 인정받는 이란 출신 감독이 앞서 몇 쯤 자리한 가운데, 베를린과 베니스에 이어 칸 최고상까지 석권한 자파르 파나히의 매력이 무언지 알아보는 건 의미 있는 일이 될 테다.
1979년 이란 종교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의 종교 중심적 혁명이 성공하며 오늘에 이른 이란이다. 무너진 팔레비 왕조의 개혁정책을 두고서 많은 해석이 엇갈리는데, 성급한 근대화가 이란 현실에 맞지 않았단 주장과 근대화에 따른 자연스런 분열이 있었을 뿐이란 의견이 나뉘는 것이다. 어찌됐든 서구화와 탈종교화 흐름에 저항한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집권 뒤 이란은 종교경찰이 부활해 불경한 이를 단속하고 여성은 히잡으로 머리를 가려야만 외출이 허용되는 지난 시대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불경, 그것은 얼마나 자의적인가. 공경할 것에 하지 않는다는 이 말을 권위 있는 이들은 제게 맞지 않는 이를 제압하는 명분으로 마구 휘둘러왔던 것이다. 이란 종교경찰은 서양음악을 듣는다는 이유로, 히잡을 쓰지 않았거나 화사한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물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로, 무엇보다 체제에 반하는 일을 하였다는 이유로 시민들을 단속하고 탄압했다.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단 이유로 종교경찰에 끌려간 스물둘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죽은 사건 뒤, 이란에선 히잡 반대 시위가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그저 히잡이며 여성인권에 대한 시위가 아니었다. 불경이란 주관적 잣대로 시민들의 자유를 침해해온 호메이니 정권의 행태에 대한 전면적 저항이었다. 이란 정부가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하고 수많은 이들에게 사형선고까지 내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형을 선고받은 이들 중 네 명은 실제로 처형에 이르렀다.
3대 영화제 최고상 수상한 이란 거장
예술은 독재와 폭압, 거짓과 부조리에 저항한다. 예술이 인간 본연의 표현으로, 본래적으로 자유와 진실을 따르는 성질을 지닌 까닭이겠다. 자파르 파나히의 영화가 그와 같아서 이란 사회의 현실을 묘사하고 고발하는 작품으로 당국의 심경을 거스른 게 벌써 오래된 이야기다.
2000년 작 lt;써클 gt;이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을 때, 스승격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에 이어 이란 영화계에 또 한 명의 거장이 나왔단 기대를 받은 그다. 이란의 자랑은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작품에 불편을 느낀 이란 당국이 지난 2010년 20년간 영화 제작을 금하는 강경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혹시 몰라 나라 바깥에서 영화를 찍을까 걱정하여 해외출국 금지 조치까지 내린 건 웃픈 사연이라 해도 좋겠다.
물론 거기서 그쳤다면 오늘과 같은 작품이 나올 수는 없었을 테다. 자파르 파나히는 정부의 감시를 피해 몰래 영화를 제작했고, 5년 뒤인 2015년 lt;택시 gt;로 베를린영화제에서도 황금곰상을 얻어냈다. 제게 닥친 상황을 재료로 삼아 픽션과 다큐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만든 자파르 파나히는 탄압에 저항하는 전사적 감독의 상징으로서 유럽 사회에 제 존재를 각인시켰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정부에 의한 구금과 목숨을 건 단식투쟁 등 결코 편치 않았을 사정에도 자파르 파나히의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히잡 시위 이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lt;노 베어스 gt;를 완성해 화제가 됐던 그가 출옥 뒤 완성한 lt;그저 사고였을 뿐 gt;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 수상하니, 그는 그대로 국가폭력에의 저항이 거둔 예술적 성취라 해도 좋을 것이었다. 물론 일각에선 자파르 파나히가 저항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해 고평가를 받는단 해석도 없지는 않다. 다른 수상작, 또 이란 전대의 거장들과 비교하여 영화적 완성도가 높지 않다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없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관련 기사 : 20년간 영화 촬영 금지, 탄압받는 거장의 역작)
그럼에도 오늘 이란의 환경에서 그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을 떠올리자면, 또 그에 따른 후폭풍을 감당하는 용기를 생각하면 lt;그저 사고였을 뿐 gt;은 영화 바깥에서 진짜 이야기가 펼쳐지는 색다른 작품으로 읽히기도 하는 것이다.
전체 내용보기
Saturday 1 November 2025
⁞
